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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훈 May 20. 2021

기적을 바라십니까

-- 브런치로 읽는 일용할 양詩(꿈과 기적) --

기적에 관하여    

                                             -이창훈


기적을 바라십니까?                          


바라고 바란다면

무엇으로부터의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바라고 바란다면

누군가의 재림을 통한 구원을 바라진 마십시오


이 황사 부는 사막에서

정녕 바라고 바란다면 함부로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를 꿈꾸진 마십시오


이 이기적인 세상에서 

이기적인 욕망을 사랑으로 포장하진 마십시오

그런 사랑의 오아시스는 단지 외로운 섬일 뿐입니다


이 이기적인 세상에서

정말 이기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의 손과 발 

그 손과 발을 움직이십시오


이 이기적인 세상에서

정말로 믿고 믿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의 뜨거운 가슴

가슴 뛰는 순간 순간을 사십시오


기적을 바라십니까

이 이기적인 세상에서 

정말 기적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온전히 당신 자신 뿐


자기 자신의 손과 발

그 더운 가슴을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뚜벅뚜벅 걷는 길 위로

기적은 오랜 세월을 지나 더디게 옵니다


-- '기적은 오랜 세월을 지나 더디게 옵니다' --





새 학기 봄날의 문학 시간, 교과서는 잠시 덮어 놓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묻곤 합니다.

출석부를 보고 이름을 부른 후, 눈을 살며시 맞추며 

"00야, 너의 꿈은 뭐니?", "ㅁㅁ야, 너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니?"


조금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는 녀석들도 더러 있지만, 이 당황스런 질문에 

"변호사요.", "수의사에 도전해 보려구요.", "저는 뮤지션이 되고 싶습니다.",  "9급 공무원." ... ... 

아이들은 짧든 길든 자신의 꿈에 대해 나름 생기있게 얘기합니다.


각각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 가끔씩 반문을 던집니다. 

"영화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진석이에게 

"영화 평론가가 되기 위해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니?"


제 질문에 "네~?"하고 잠시 멍을 때리다 

"특별히 따로 준비하는 건 없어요. 00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는 게 우선의 목표입니다."

그 대답에 다시 

"00대학교에 들어가면 영화 평론을 잘 쓸 수 있는 거니?"


약간은 불콰하게 상기된 얼굴로

"그래도 영화학과에 입학해서 영화 연출을 공부하면 제 꿈을 이루는 데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요? 이왕 도전한다면 영화학과가 유명한 00대학교에 가야죠. 우선은 00대학교에 입학하는 게 목표입니다."


진석이가 말한 답은, 사실 대한민국의 공교육 속에서 꿈을 꾸는 아이들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해답 중의 하나입니다. 일반계 인문고에 들어온 최고의 목적은 우선 대학에 가는 것이고, 입시를 잘 치르기 위해서는 5지 선다 수능 시험을 잘 치뤄야 하는 상황. 눈 앞에 닥친 입시전선에서의 승리 후, 그 때 자신의 '꿈'을 위한 노력을 해도 된다는 그 생각.


대다수 고등학생들의 '꿈'들이 그저 점수 맞춰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데 있다는 현실은 그렇다쳐도

나름 분명히 좋아하고 하고 싶은 영역이 분명한 진석이 같은 아이들마저 대학 진학 후에 그 '꿈'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건 무언가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닌가요.


엄밀히 말해 자신이 지금 '영화 평론가'를 꿈꾼다면 영화에 대한 리뷰나 평론을 지금부터 써야 합니다.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이 마냥 좋고 기쁘다면 그 기쁨의 행위를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평론까진 아니지만, 지금 어설프고 설익은 감상과 비문이어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담아 한 편의 글을 땀흘려 써 보아야 합니다. 입시공부라는 좋은 핑계에 기댈 게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작업이라면 규칙적이고 일관된 흐름 속에서 그 좋아하는 일들을 자꾸 접하고 직접 해봐야 합니다. 


꿈을 묻고 답하는 문학 시간, 나의 친애하는 어린 벗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꿈을 품고 있다면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을 지금 이 순간부터 해야 한다고.

정말 좋아해 하지 않고서는 미칠 것만 같은데 어찌 그 일을 뒤로 미룰 수 있느냐고.


꿈은 어쩌면 '꾸는 것'이 아니라 '파는 것'이라고.

꿈을 꾸는 자가 아니라 꿈을 파는 자들의 거칠고 굵은 손과 발. 

꿈은 바로 거기에서 조금씩 샘처럼 솟아난다고.


소중히 꿈을 품은, 뛰는 가슴 안고

거칠어져 가는 손과 발로 꿈을 파고 또 팔 때

기적은 비로소 오래 세월을 다해

너(당신)에게 다가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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