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서 쓰는 그리움의 시
-이창훈
1.
어두운 극장 안이
낯설게 환해지기 전
남자의 이름 라이언
그녀가 맨발로 디딘 흙
그 대지의 살결에 입맞춤하는 순간
하마터면 정말
하마터면 울 뻔했어
2.
네가
끝없이 나를 잡아 끄는
네가 없었다면
가라앉는 소파의 구심력 속에
잠기는 울음으로 파묻혀 버렸을지도 몰라
3.
살 수 없는 지옥에서
살 수 있는 천국으로 돌아와서
처절하게 귀환하는 그 모습 때문만은 아니야
나약한 인간이 절망의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한 의지와 행동, 그런 부활의 드라마는
더없이 아름답지
아름다워
하지만 그건 눈물의 영역이 아니야
감탄의 영토지
4.
문제는 이분법이야
생과 사, 가능과 불가능,
지옥과 천국, 이곳과 저곳, 너와 나
지구와 우주, 윤리와 금기, 넘침과 결핍
그 일상적인 가름과 가르기가 와장창
얇은 유리창만큼도 못되게 한순간에 깨어지는 그런
카타르시스
그래 그런 카타르시스 때문이었어
어쩌면 그건 서러움이었을지 몰라
5.
삶은 늘 그렇듯 마치 영원히 살듯이 살아가지
생의 영토에서 죽음은
언제나 이물감을 주는
단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낯선 물체일 뿐이지
멀리서 바라보는 밤하늘 같은
아스라이 떨어져 있어 실재하지 못한
감각하지 못한
6.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올려다 보면 거기 밤하늘이 있어
멀리서 눈밝히는 별들도 드문드문 빛나고 있지
멀리서 아스라이 빛나는 것들은 늘 아름다웠지
그러나 거기엔
그 흔하게 넘치는 산소가 없어
매일 연일 시끌벅적 떠들썩한 그 흔한 일상의 소음이 없어
지금 여기의 충만이 바람빠진 타이어처럼 완전히
빠져나가 버린
7.
결핍의 내부
아니 결핍이라는 말조차 입다물게 하는
절대 침묵의 안
재의 공간
칠흑의 밤하늘에서 그 ‘칠흑’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적합한
어둠의 내부, 어둠조차 어두워지는 암흑
8.
오~ 놀라워라!
라이언 그녀가 입맟춘 대지
다시 맨발로 내딛은 그 감격의 흙들
너와 나, 우리의 생이 피고 지고
뿌리내려온 이 땅이
저 재의 흩날림
죽음의 공간 속을
둥 두웅 떠다니고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
지금 여기 이 순간도 끊임없이 부유하고 있다는 진실
9.
재의 공간을 부유하는 재처럼 떠다니는
둥근 알처럼
생명
오
지구~~ 라니
갑자기 환하게 낯설어 지는 이름
너
지구
10.
지구라는 이 별이
우주라는 저 곳에서
사막의 유일한 오아시스
이 피고지는 생의 마지막이란 가정은
아니 유력한 추정은
무섭도록 슬퍼 아니
뼈아프게 외로워
그래서 그렇게 서러웠을까
11.
샴쌍둥이
삶도 죽음도
지옥도 천국도
도덕도 위반도
나도 너도
충만도 결핍도 결국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그게 바로
너
네가 말하는 진실보다 더한 현실
12.
놀랍지 않아?
슬픔의 안에 있으면 슬픔의 밖 모르지
내가 그랬어
오로지 슬픔의 안
그 안에 갇혀 울었던
생
13.
그래비티
보이는 끈
끝까지 붙들고 싶은 은유란
결국 보이지 않게 공기처럼 무슨
바람의 손모가지처럼 연결된
너의 그늘 돌아보지 못할 뒷모습 그런
뒤편의
메타포
14.
당긴다는 건
안다고 말하지 않는 것
보인다고 발설하지 않는 것
모른다고 인식조차 않는 것
보고있다 눈밝히지 못하는 것
당긴다는 건
간격을 두고
거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끈을 팽팽하게 잡고 있는 것
15.
절망도 희망도 아닌 것
목적도 결론도 끝도 없이
언제 어디든 지금 여기서 과정을 디디는 일
그러니 감히 희망을 가슴 속에 품는 일
16.
재의 공간을 부유하는
이름모를 별들처럼
적막한 우주에 떠서
둥 두웅~ 떠다니는
지구 안에서
별을 올려다 보는 일
두 눈의 시력으로 그 별을 끊임없이 당기는 일
17.
그것은 바로
사랑
*그래비티: 2013년 개봉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산드라 블록이 '라이언 스톤' 역으로 열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