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거나, 혹은 섹시하거나
[김빵수씨의 取味생활1]
맛있거나, 혹은 섹시하거나
한 때, 세상은 ‘맛있는 음식’과 ‘섹시한 남성’들로만 가득 찬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배달되는 새로 생긴 음식점 전단지와 앞 다투어 걷는 길거리의 훈남 들을 훔쳐보며 혼자서 이러저러한 억측도 많이 했더랬다. 하루에 하나씩 먹어도 전 세계 모든 요리를 다 먹어볼 순 없을 거라며 죽기 전에 맛 봐야 할 음식들을 나열해보기도하고, 멋진 남자를 낚아챌 방법을 고민하며 다이어트와 성형에 대해 꽤 열심히 탐색하기도 했었다. 한참의 엉뚱한 공상 끝에 하나 궁금증이 생겼다.
혹시, 세상에 맛있으면서도 섹시한 음식이 있을까?
이래저래 레스토랑 가이드북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람이 한 명 있다. 매일 보는 건 아니고 가끔 사무실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인데, 하루는 당신이 마실 아메리카노를 뽑으러 갔다가 한 잔 더 만들어왔다며 에스프레소 한 잔을 권했다. 커피를 좋아해 하루에 5잔 이상을 마시는 나지만, 에스프레소는 쓰고 신맛이 강해 즐겨 먹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일층까지 내려가서 뽑아준 성의를 생각하며 한 입 톡 털어 넣었는데, 이게 웬걸. 쌉싸름한 첫 맛 뒤에 혀 밑으로 살포시 내려앉는 달콤함, 순식간에 입 안에 퍼지는 쾌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맛있다. 게다가 무지하게 섹시하다.
맛있으면서도 섹시한 음식을 하나 찾았다는 것도 즐거웠지만, 설탕 한 스푼으로 에스프레소의 매력지수가 급상승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편으론 이런 ‘섹시가이’ 를 그저 쓰디 쓴 보약 같은 커피라고 치부해버렸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 아주 작은 관심으로, 미세한 변화로 고통스러운 보약이 멋진 디저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여태 몰랐을까.
사람에게 이 법칙은 더 쉽게 적용된다. 겉보기에 냉정하고 차디찬 사람일지라도 에스프레소 끝에 자리한 달콤함처럼, 속 깊은 곳에는 따뜻함이 있을지 모른다. 머리숱이 적은데다 내성적이기까지 한 남자도, 세련된 베레모를 씌워주고 그의 손에 드럼 스틱을 살짝 쥐어 준다면 순식간에 ‘간지남’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매력남, 매력녀의 준비과정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잠깐의 노력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말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무엇’이 존재한다. 맛있거나, 섹시하거나. 맛있으면서도 ‘무진장’ 섹시할 준비가 되어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