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은 잘못 없~~~~다
[방시인의 取味생활3]
땅콩은 잘못 없다
군것질을 잘 하지 않는 내가 즐겨 먹는 주전부리가 딱 한 가지 있다. 바로 견과류다. 땅콩, 호두, 캐슈넛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는다. 달지 않고 오독오독 씹는 맛이 좋고, 고소하면서도 몸에 좋으니 이것보다 ‘훈훈한’ 간식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맛있긴 한데 이 사이에 끼어 불편하다는 이유로, 또는 견과류 특유의 고소함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마, 곱창, 선지 등과 함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음식 중에 하나일거다.
하루는 지인이 깜짝 선물을 보내왔다. 상자에 고이 담겨 온 주인공은 생땅콩이었다. 견과류마니아인 나지만 대부분 마트나 시장에서 볶음땅콩, 구운아몬드 등의 완제품(?)을 사다 먹었을 뿐, 날것을 사서 익혀 먹어본 적은 없었다. 당황해하고 있는데, 택배상자 위에 조그맣게 붙여진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국산땅콩이에요, 삶아서 하나씩 아껴 드세요.’
끓는 물에 20분 쯤 익힌 뒤 맛을 보려 하나를 꺼냈다. 엄지와 검지에 힘을 꽉 주고 껍데기를 눌렀는데, 어라? 알이 하나 밖에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개를 더 깨봤다. 하지만 또 한 알, 다음 것도 한 알. 처음엔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껍질을 깨면 깰수록 알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가 솟아올랐다. ‘어쩜 이럴 수 있냐’고 씩씩거리면서 삶은 땅콩을 죄다 까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 두 개가 온전한 것들, 하나만 건실하거나, 혹은 없는 것들을 골라내기를 30분 째,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근데, 땅콩이 그런 말 한 적이 있었나?,’ 곰곰이 따져보니, “껍질이 두 개면 알맹이도 두 개여야 한다”고 그 누구도 나에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 하물며 땅콩이 나에게 그런 약속을 한 적은? 더구나 없었다.
며칠 전 유명 통신회사를 다니다 회사를 관두어야하는지, 참고 다녀야하는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찾아온 후배도 비슷한 경우였다. 그녀의 입장인 즉슨,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평생직장’이라 여기고 들어왔는데, 자신이 노력한 만큼 댓가를 주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일하는 기계로 취급하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갈 때 누구도 그녀에게 ‘이 곳으로 온 이상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고 못 박지 않았다. 그저 당시에 그녀는 일자리를 갖고 싶어 했고, 회사는 일을 처리해줄 사원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러하니, 더 이상 내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 쿨하게 사표를 던지고 나오면 그만이고, 눌러 앉아있는 다 해도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감정도, 행동도, 심지어 직장에게까지 신랄한 자신만의 이상적 잣대를 들이대며 울분을 토한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이 변하느냐’‘며 애인에게 소리칠 필요도, ”너가 나한테 이렇게 할 줄은 몰랐다“고 친구에게 섭섭해 할 이유도 없다. 처음부터 당신과의 계약은 있지도,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니 절대 잊지 말자. ’땅콩은 절대, never, 한.번.도 그런 말 한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