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3

3

by 김병호

둘째 날


회의에는 정보분석팀과 현장팀 오십여 명이 모두 참석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대면 회의에 직접 참석한 것은 대형 정치적 사건이 잦아들기 시작한 20년 전 이래 처음이었다. 거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앉아 있는 경수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 사건 소식을 접하고는 단숨에 달려가 현장을 일일이 둘러보았던 일로 경수는 부장에게 단단히 주의를 들었지만 지금도 좌불안석이었다. 사건 자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기도 했지만 사라진 OBS 연구소 건물이 바로 엄마의 데이터를 보관하는 스토리지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음 연락을 받고는 행동 원칙에 반해 사무실이 아닌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검색해 알아낸 사실이었다. 그 건물에는 엄마를 포함해 시험적으로 OBS 시술을 받은 다섯 명의 개인 정보와 적용된 기술, 시술 이후로 상태와 변화가 낱낱이 기록되고 있고 또 유례없는 보안 속에 독립된 상태로 떨어진 데이터의 섬 같은 곳이었다.

현장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평했다. 칠월의 태양은 어제와 같이 내리쬐고 있었고 연구소 옆 낮은 산의 나무들은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그러나 같은 자세로 흔들리고 있었다. 외견상 평화로운 연구소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몇몇 연구원들이 좀 떨어진 거리에 모여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이 광경의 주인은 낯익은 평화였다.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경찰과 국가정보기관의 차 몇이 나와서 한가롭게 땅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정밀과학수사팀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그저 일하는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경수가 차에서 내려 달려가자 한둘이 눈길을 주며 일어섰지만 경찰 배지를 확인하고는 모두 자기 일에 신경을 돌렸다. 현장만 보자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닥터 박을 찾아야 했다.

어제 아침이었다. 몇은 운동을 위해 숙소를 나섰거나, 용역원 몇은 청소하기 위해 나섰거나, 야간근무를 선 한 경비원은 퇴근하기 위해 주섬주섬 짐을 챙기다가 먼 산을 봤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이상했다. 여섯 개의 건물이 들어선 작지 않은 연구소의 경계가 동쪽으로 야산과 만나는 제일 끝에 3층짜리 데이터 저장 건물이 서 있었다. 20여 년 전, 수도권이라고 불리는 땅 먼 끝자락에 심심찮게 공공기관과 연구기관들이 들어서던 시기에 연구소는 지어졌고 으레 그렇듯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한 평범한 땅이었다.

그런데 연구소에서 아침을 맞은 사람들 모두가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산이 너무 가까이 있고 너무 많이 보였으며 뭔가 크게 허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 다른 장소로 잘못 나왔나 적잖은 사람이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연구소의 건물 하나가 두부모 자르듯 사라졌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다가 드디어 이 놀라운 일이 현실이라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본 순간 모두는 각자 개성대로 귀신에 홀린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 자리에 눈부신 백색 불빛을 휘감은 외계 우주선이 내려와 4.4광년 거리의 센타우리 알파에서 날아온 외계인이 끈적끈적한 자신들의 계절 과일을 파는 장면을 목격했더라도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 데이터동이 있던 자리는 정확하게 건물의 넓이만큼 직사각형으로 파여 있습니다. 벽면은 어떤 도구로 잘려 나가거나 파 들어갔다는 흔적은 전혀 없고 옆면의 재질은 원래 있던 토양입니다. 깊이는 1.8m로 평탄한 바닥은 흙으로 덮여 있고 키 낮은 풀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풀들은 적어도 3개월 이상 자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대형 화면은 아스팔트가 깔린 평지에 푹 꺼진 거대한 사각의 구멍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바닥에서 무슨 일 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흔들리고 있는 풀들이 보이고 근경으로 땀을 흘리며 난감한 표정으로 보고를 하고 있는 감식반 반장의 표정이 대비되었다. 청장까지 참석한 회의였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사건이었다.

“누가, 왜 이런 일을 했는지는 모르더라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술이 있기는 있습니까?”

제일 앞자리에 앉은 청장이 직접 입을 열자 반장의 얼굴에서는 거의 돌가루로 떨어질 지경이었다.

“아직 단정할 수 있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화면은 바닥에서 흔들리고 있는 풀들을 확대해 보여 주었다. 작은 초록의 풀들이지만 생김새가 익숙지 않았다. 흔히 보던 식물이 아니었다. 작은 원반 모양의 잎은 그 가장자리 부분이 아래로 말려들어가면서 불에 탄 듯 시커먼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머지 부분은 짙은 초록이지만 잎인지 꽃인지 알 수 없었고 하나의 잎에 줄기가 여럿 내려가고 있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땅에서 각각 자란 여러 줄기가 한순간 모여 하나의 기괴한 초록 덩어리로 모이고 있는 형상이었다. 세부적으로 봤을 때 모양만으로도 섬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급하게 식물학자들을 불러 얘기를 들어 보았는데 현재 보고된 적이 없는 식물이랍니다. 우리가 가진 정보는 이것 하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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