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셋째 날
새벽녘에 근무 모드를 재택 환경으로 변경하고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아들의 뜻밖의 귀가에도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아니 우울해져 있었다.
“왔니? 나도 좀 자려 했는데, 잠은 다 잤네.”
“예.”
“쉬어라. 나도 좀 쉴란다.”
엄마가 진짜 잠을 자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투는 예전 몸이 피곤한 엄마와 똑같았다. 아마도 순간순간 현재의 자신을 잊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감추기 위한 연기인지 알 수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더 이상 캐물을 수 없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이제 엄마에게 모습이라는 것은 없어졌지만 엄마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OBS의 담당 의사는 급격한 환경 변화와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 때문에 감정적 기복이 심할 수 있다는 주의를 주었지만 내일 해가 뜰 것이라 예상되고 또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밤이 올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그러나 한동안 엄마는 다가오는 밤을 건널 수 있을지 두려워해야 하는 날들을 보냈다.
환갑을 맞은 엄마의 폐에서 발견된 암은 완벽하게 분석된 종류라고 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병원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치료 시작 3개월 만에 암세포는 걷잡을 수 없이 온몸으로 전이되었다. 남들은 평균 수명의 절반을 지나는 시기에 죽음이 꿈틀거리는 모습으로 눈앞에 닥친 것이다.
이때 OBS는 조용히 제안했다. 병을 고칠 수 있는 시기는 놓쳤지만 육체 없는 삶은 가능하다고. 물론 아무리 뇌를 분리시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뇌 자체의 생물학적 수명이 있다. 그러나 아직 멀쩡한 뇌가 몸 안의 장기들이 질병 등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수명을 다한다고 해서 같이 용도 폐기할 이유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기가 가능하다면 이 또한 새로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엄마는 안방에 장롱으로 위장한 생명 유지 시스템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옛 몸을 버리고 정신만 살아있는 엄마는 뜻밖에도 일주일 만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죽음의 우울에서 거의 빠져나온 것 같았다.
정오가 지나 겨우 밥상을 내고 혼자 맥없이 밥숟가락을 깔짝이다가 문득 경수는 뒤통수를 때리는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 근거도 없고 인과관계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항상 사건을 생각하며 지내는 경수에게 실마리는 이런 과정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찾았다. 물론 거실 어디에도 엄마는 없었다.
“엄마! 엄마?”
쉽게 대답이 나서지 않았다. 요리든 드라마든 뭔가 시작하면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의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어, 경수야. 왜? 밥은 맛있게 먹었니?”
“뭐 하시는데 그렇게 바빠요? 엄마는 바쁘다고 해도 시간이 걸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엄마 주변 환경은 지금까지 나온 가장 완벽한 병렬시스템이니까. 뭐 좀 과하게 데이터 처리한다고 해서 시간이 지체되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텐데.”
“맞아. 그건 그냥 아직 버릇 때문이다. 몸하고 같이 버리지 못한 버릇.”
“참, 엊그제 밤에 엄마 혼자 욕했지? 나 들리지 않게 누구 나쁜 놈들 어쩌고.”
“얘는 자는 줄 알았더니 듣고 있었니? 너는 어릴 때부터 잠귀가 밝았었네. 맞아.”
“누구 욕을 한 거야?”
엄마는 또 머뭇거렸다. 버릇대로. 그리고 갑자기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