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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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공무원 특별할인이라고? 이런 미끼로 너한테 접근해서 OBS가 나를 채 간 거야. 네가 경찰공무원이니까 이런 실험이 외부적으로 나가지 않게 보안을 거는 일이 쉬웠겠지. 내 뇌 상태나 반응 같은 일체의 정보를 스캐닝할 권한을 가져가는 일도 그렇고. 혹시 실패해 내가 죽더라도 문제 삼지 않을 계약도 수월했을 거고. 여기까지도 좋단 말이야. 거기다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타났을 때 자기들 마음대로 살아 있는 나를 가져간다고? 너는 알고도 서명한 거야?”

경수는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엄마의 폭발음을 들어야 했다.

“이제 네트워크를 훑고 다니는 일 정도는 지겨워. 뭐든 다 알아낼 수 있어. 이런 일 예상 못 했을까, 걔네들? 그리고 너도 이런 조건들 다 알고 서명했니?”

경수는 더 차분해지려 노력했다.

“어쨌든 엄마하고 같이 있을 수 있잖아. 옛날에 떠나 버린 아버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그래도 엄마는 같이 있을 수 있잖아. 그거 이상으로 중요한 일은 없었어.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같이 있잖아.”

경수는 몇 주 전만 해도 엄마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소리를 엄마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그저 인공지능인지 의심 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와 함께하는 목소리가 엄마라는 사실에 작은 의심도 없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경수는 한숨 돌리고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그래서 OBS 사람들 욕을 한 거였어? 이러저러한 조건들 알아내고?”

엄마는 한참 동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오후의 볕을 차광 커튼으로 가리고 거실 소파에 누웠다. 엄마의 얘기를 들어야 했다.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직관이 강해졌다. 가라앉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수야, 그거 아니? 육신과 정신의 관계라고 할까? 내가 이 꼴로 변한 다음에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어. 그중 하나가 정신이 육체에서 벗어나는 일이야. 보통이 사람이 죽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 뭐, 옛날에 수련하는 사람들은 미리 겪어봤다고 하는데, 나는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가 뜻밖에 겪는 경우야. 나는 욕망에서 자유로워졌어. 비참한 기분도 들지만 놀라운 경험이야.”

이야기를 듣던 경수는 끙,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엄마가 무슨 욕망이 있었다고 그래? 그저 먹고 살려고 혼자 아등바등 몸부림쳤지.”

“일단 살아 있는 일 자체가 욕망이야. 얘가 나를 무시하네. 나도 이것저것 가지고 싶었고, 돈 욕심도 있었고, 너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고 싶었어. 그리고 나도 뜨거운 몸을 가진 여자야. 네 아빠 떠난 후에 남자도 몇 명 만났었는데. 너는 감쪽같이 몰랐지? 이제는 이런 얘기 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네.”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경수는 애써 외면할 생각도 없었다. 오늘은 그저 엄마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우리 몸 하나하나는 인간이라는 종이 생존하기 위해 유전자를 전달하는 징검다리야. 하나둘 사라져도 강을 건너는 데 아무 지장 없는 그런 디딤돌 중 하나일 뿐이야. 허망하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보면 몸이라는 게 정신이 머무는 플랫폼이기도 해. 그리고 정신이 육체에 머물게 붙들어 두는 접착제가 바로 감각이고 욕망이야. 엄마 유식하지? 유식해졌지?”

“그래서요? 감각이 없으면 정신이 빠져나가기라도 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내심은 매일 매 순간 엄마에게 놀라고 있었다. 경수는 짐작했다. 엄마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면서 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실행하려 하고 있었다.

“맞아! 몸에 감각이 없으면 정신은 몸 밖으로 빠져나가. 쓰윽 몸에서 빠져나가 높은 곳에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게 되잖아.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던 상황은 감각과 관련 있어. 모든 욕망은 몸에서 나오잖아. 몸과 정신은 감각으로 교신해. 그리고 욕망은 몸에 정신을 붙들어 매는 접착제야. 나는 몸이 없잖아. 말하자면 하고 싶은 게 없는 상태가 되면서 정신은 자꾸 어디론가 가려고 해. 지금도 내 머리 안에 정신을 붙잡고 있느라 힘들어서 가끔은 정말 내 머리를 떠나서 멀리 둘러보고 올 때도 있어. 며칠 전에 OBS에 갈 때도 그냥 쑤욱…,”

경수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OBS에 갔다 왔다고? 가서 뭘 했는데?”

“어머, 얘 몸도 없는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그러니? 그냥 들어가 둘러보고 나온 것뿐이야.”

엄마는 얼버무리고 있었다. 이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누군가 OBS 네트워크를 뚫고 들어간 흔적을 찾았으니 모든 인력을 집중한다는 명령이었다. 이 일은 집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경수는 사무실로 나갈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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