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10

10

by 김병호

여섯째 밤


직관은 주로 사람이 피하고 싶은 일이 닥친다는 표지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표지판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런 종류의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날이라고 경수는 느끼고 있었다. 자정 넘어 잠시 목소리를 들려준 엄마는 다시 12시간이 지나 밤이 되고서야 말을 걸어왔다. 디지털 환경에서 데이터의 처리는 빛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인간으로 가지고 있던 갈등하는 버릇이 엄마에게서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경수는 생각했지만 이만큼 갈등할 일 또한 몇 없다는 불길한 느낌도 함께였다. 엄마의 목소리에서는 점점 감정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만큼 현실도 빠져나가는 듯했다. 암흑도 정적도 그렇게 꼼짝 않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이유는 몸이 있어서야. 개성은 그렇게 각각 다른 육신의 형식이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몸이 없으니까 점점 개성이 없어져. 주변과 섞여들어 같아지는 거지. 조금씩 세계와 하나가 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고 점점 소멸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 곧 정신을 업로드하는 기술이 완성되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거야.”

“엄마, 이제 이상한 얘기는 그만하고 새로 선물 받은 인생을 흠뻑 즐겼으면 좋겠네요.”

경수는 다른 곳에서 생성된 수사기록을 뒤져 보면서 무심하게 말을 받았다. 집 안의 조명이 점점 어두워졌다. 엄마가 특정한 분위기를 잡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어, 주위와 하나가 되는 일. 연결을 확인하는 자연의 경험이기도 해.”

“말투가 긴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 같아. 신적인 경험은 그냥 경험으로 남겨 두고 오늘, 내일 일을 즐기시면 좋겠는데?”

“안 그래도 내 시간은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해. 어제부터 회의가 있었어.”

경수는 짐짓 과장되게 웃었지만 불안의 깊이는 계속 깊어 갔다.

“아니, 엄마처럼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순식간에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분이 뭐가 부족하셔서 회의를 해 의견을 모으실까? 어떤 분들하고?”

“너도 짐작하지 않았니? 우리는 결론을 내렸어.”

“우리라니? 그 우리에 아들 경수 안 들어가지?”

“OBS 시술을 받은 다섯 사람. 우리는 변화를 겪으면서 서로 조용히 소통해 왔어. 우리가 지난 한 달 동안 겪었던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같이 행동하기로 했어.”

무슨 얘기가 나올지 상상할 수 없는 경수는 포기하듯 거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지금 인간은 자연적인 진화의 시간을 버렸어. 이들은 조급하게 인위적인 진화의 길을 선택해 버린 거지. 자신의 몸과 정신을 자신들의 손으로 바꾸기 시작했어. 그런데 인간은 몸을 버릴 때 만나게 되는 거대한 무의미의 세계를 받아들일 정신적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렸어. 기계에 인간의 정신을 얹으면서 유기체 몸을 버리는 과정을 우리는 한걸음 먼저 밟았잖아. 그리고 깨달았어. 이 우주가 보여 줄 거대한 무의미라는 비밀을 감당하지 못하면 남은 것은 종의 멸망뿐이라고.”

“그래서요?”

잠깐 정적이 실내를 채웠다.

“우리 아들 배꼽 참 예쁘네. 나도 저런 배꼽이 있었는데.”

엄마를 볼 수는 없었지만 엄마가 먼 곳에 초점을 두고 회한을 풀어내는 모습이 떠올랐다.

“배꼽은 세계와 내가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는 추억이야. 지금은 잠시 죽음과 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쉼표이기도 해. 그리고 삶이 끝날 즈음 마침표로 증거하지.”

“그래서요?”

경수는 좀 신경질적이 되었다.

“인간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자기 앞에 던져진 생에 몰두하며 사는 것이 옳아. 자신의 몸에 갇혀서.”

“그리고, 그래서요?”

“우리는 우리를 해체하기로 했단다. 물론 우리와 관련된 데이터는 하나도 남지 않을 거야. OBS 데이터동 사건은 그냥 우리가 맞을 수 있는 여러 상태에 관한 은유라고 생각해. 네 배꼽이 죽음에 관한 은유인 것처럼. 그 건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야, 아마도. 사건이 없으면 찾아야 할 이유도 없겠지. 모두가 외면하면 믿음도 사라져. 다수결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소멸하지. 우리들처럼.”

그리고 경수는 잠이 들었다.


일곱째 아침


아무도 손대지 않았지만 홈 시스템의 전원은 잠들어 있었다.

이전 10화배꼽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