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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Mar 14. 2021

맥스웰 방정식

그냥 내가 말하는 내 시 1

 시발은 시(詩) 자에 도롱이 발(襏) 자로 옛말로 치면 시로 만드는 우비이다. 세상이 내지르는 비를 시로 잠깐 피해보자는 의미라고 우길지언정 솔직히 그냥 스스로를 향한 욕일 수도 있다. 30년 시를 썼음에도 아무도 안 읽던 차에 에라, 그냥 막 내가 지르기로 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까운 몇과 나누는 위안이자 뒤로 속살거리며 까발리는 비밀이다.      

 그 첫 번째.               



 맥스웰 방정식     


 그러니까 

 위악도 농담도 위상공간도 아닌 현실에서 여자의 이름은 춘자였다 춘자가 뿌리는 향수는 반경 3Km의 영향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공간 안에 들면 남자들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춘자의 표면에 전기를 띤 입자들이 얼추 모여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춘자의 주변에는 특정한 장場을 형성되었다는 이론을 검증하려 덜 익은 복숭아 찌르듯 춘자의 볼에 손가락을 댔던 부동산 박 씨가 정신을 차린 곳은 내장이라도 보일 듯 닳은 소가죽 소파 뒤편으로 2미터는 족히 날아간 자리였다 순간 주변이 벼락이라도 치듯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는 증언은 동석했던 과일가게 추사장의 것이었다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춘자의 표면에는 뭔가가 있다고 수군대기 시작한 지 얼마 후 그러나 어차피 이 우주에 전하는 두 종류밖에 없다며 힘없이 춘자를 따라 걷는 남자가 마을에 나타났다

 말자의 변덕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이 예측 가능한 특징을 가졌다 이런 변화가 유일하게 춘자의 꼭지를 돌게 하는 원인이었다는 가설은 지역신문의 이단짜리 기사에 해당하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기자의 관찰 결과 말자의 변덕이 최고치에 이르는 시기는 춘자가 변치 않는 인기로 많은 팁을 거둔 날과 거의 일치했다고 한다

 두어 달 전 말자가 마을에 모습을 드러낸 후 정다방 내부에서 일어난 역학관계의 변화나 춘자와의 불화에 상관없이 말자에게는 항상 남자 친구가 있었다 우주 탄생 이후(정확하게 10^-10초 후부터) 항상 그랬으며 말자를 반으로 나누더라도 반쪽짜리 남자 친구가 탄생해 붙어 다녔을 것이라고 수군댔다 하여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미모를 수완으로 메우고 있는 말자는 남자 친구에게서 자신의 모든 성질머리를 받아주는 존재 이상의 가치를 찾지 못했다 이런 남자의 존재는 우주적 안정에 일조하는 면이 크다 실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말자와 남자를 바라보면 둘은 평온해 보인다 남자가 말자의 모든 돌발적 에너지를 받아내어 감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부적 들끓음을 눈치챌 수 없다 

 춘자가 만드는 장場 또한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었다 태양 흑점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는 설도 있었지만 보다 현실적인 원인은 주변의 습도와 그날 화장 먹음의 정도, 지난밤 잠자리의 만족도 등이 거론되고 있었다 사실 말자가 보이는 변덕의 근본적인 원인은 춘자의 아름다움이 매 순간 어떤 상태를 보이는가, 라는 주장이 정설이다

 서로 갈등하지만 삐딱하게 공존할 수밖에 없으며 서로에게서 새로운 에너지(이 안에는 부정적인 것 또한 많다)를 끌어낼 수 있는 춘자와 말자의 관계를 밝힌 이조차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사실은 이 둘 중 누가 누구의 원인이며 결과인지, 이 둘이 보이는 서로에 대한 촉매작용은 종국에 발생할 어떤 결말을 가리키고 있는지, 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아직도 이 둘이 마을의 긴장과 아슬한 평화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집 포이톨로기에서. (문학동네 2012. 77          






 맥스웰 방정식은 신박한 방정식이다. 아, 뭐 이쯤에서 방정식이라는 무지막지한 단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질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두통의 원인이 되는 이 방정식 덕에 현대사회는 안락하게 지내고 있다. 바로 전기의 현상과 자기의 현상이 어떤 관계인지 눈에 불이 번쩍이게 밝혀주는 식이다.

맥스웰 방정식. 뜻은 몰라도 모양은 참 아름답다.

 그리고 이 시골 마을에도 번쩍이게 놀랄만한 변화가 있었다. 누군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춘자가 전기의 흐름이며 그 주변에 생기는 전기장이라면 말자는 자석 주변에 만들어지는 자기장이다. 사실 이들은 시에서처럼 따로 다니지는 않다. 전기장이 자기장이며 이 안에서 전류가 만들어진다. 맥스웰의 놀라운 발견은 전기장이나 자기장이나 우리가 눈으로 보는 빛과 같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 부분은 ‘=’이다. 잘 알 듯 ‘=’이라는 기호는 그 자체로 방정식이라는 수학적 관계를 만들면서 그 왼쪽과 오른쪽이 같다는 선언이다. (특정한 변형을 거치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같고 아인슈타인의 선언에 따르면 무형의 에너지와 모양을 가진 질량이 같다.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질량 관계 방정식


 그런데 이것 어디서 많이 보던 형식이다. 은유(metaphor)이다. 은유는 시에서 많이 쓰는 기술로 왼쪽과 오른쪽이 같다고 우기는 일이다. 내 ‘마음’은 ‘호수’이고, 저 ‘하늘’은 내 ‘사랑’이다. 알고 보니 과학도 은유라는 형식을 즐겨 쓰며 시도 방정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맥스웰이라고 하면 달달한 봉지커피가 떠오른다. 얄팍한 비유의 정신이 시골 마을의 다방을 떠올린 이유는 이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이제 남은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시의 미학이다. 세상의 수만큼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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