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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Feb 17. 2024

설거지

두 손이 바삐 움직이는 곳에는

세계의 절반이 한데 뒤섞여

달그락 딱딱 소리를 내는 중이다     


웃음과 맛과 향기가

보기 좋게 지나간 이후는

이토록 끔찍한 오물(汚物)들의 장이다     


들러붙은 밥풀과 고춧가루와

타액 묻은 가시와

이것저것 섞인 국물이

찡그린 손길에 씻기어 간다     


밝고 이쁜 시간이란 반드시

남기고야 마는 것이다

역하고 혐오스러운 자국을     


이 난장(亂場)은 그늘 속 선명한 본연

거대한 일상의 걸음을 이루는

두 다리의 한쪽인 셈이다     


집기와 잔반의 사악한 틈에서

손가락 하나하나 오염되는 지금     


세상의 뒷면에 닿아버린 이의

기이한 경외감이 솟구쳐 오른다

뒤집힌 비위의 구역질과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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