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개

by 문창승

안개가 흩어진다


나를 감싸고 있던 세계가

웃음과 시간의 방울들이

버티다 끝내 멀어져 간다


오랜만의 선명한 풍경이란

낯설도록 화려한 듯싶다가도

실은 삭막한 공기를 지녔다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훑어보니

옷가지는 오랜 물기에 젖어있고

양 볼은 울음에 덮여있다


그러다 돌부리에 툭,

걸리고서야 남자는 깨닫는다

자신이 뒷걸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개를 드니 저 앞엔 여전히

보드랍고 포근한 안개 덩어리가

차분히 앉은 채 흩어지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자각의 눈물을 닦는 남자


사실은 내가

결국엔 내가

기어이 내가

흩어지고 멀어지는 것이다

고맙고 깊은 품으로부터


스스로 떠나는 걸음이기에

아픔은 더 가혹히 목을 조른다

나를 벌하는 나의 손으로 꾸욱,

이렇게 조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언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