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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Jun 30. 2024

언약

눈물은 나지 않았다     


깨진 조각들을 멍하니 보다

하나씩 조심스레 집어

구석으로 옮길 뿐이었다   

  

이전의 모양은 어땠을까

언제부터 깨져 있었을까

무수한 빗방울에 기억도 젖었나 보다     


서둘러 버릴까 하는데

난데없이 막아서는 손길

어느 과거의 내가 고개를 젓고

그 눈은 흔들리는 촛불만큼 붉다

     

다시 붙여야 한다는 의지가

마음 어딘가에서 샘솟는다

오랜만의 변덕인지도

잊어버린 맹세인지도   

  

손이 기억하는 지도를 따라

공들여 조금씩 잇고 붙인다

어쩌다 살이 베여 상처가 피어도  

   

드리운 어둠 속 반짝임 아래

마침내 자리를 박차고 서니

두 손에는 잔뜩 금이 간 무언가

그럼에도 모습을 되찾은 무언가   

  

이윽고 선명해진 세상이

뒤늦게 터져 나오는 눈물로

다시금 어그러져 춤춘다    

 

너의 그림자 담긴 보물에

지난 언약이 숨을 넣으니

아이를 잃은 듯 아프고

최초의 아침만큼 황홀하다  

   

기억의 실을 따라 달리기 시작하는 지금

이 끝에 있을 웃음을 껴안고

안녕을 속삭이는 내일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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