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그저 말뿐인

by 문창승
영화 「소리도 없이」 포스터



도대체 이 작품에서 정상적이고 떳떳한 직업을 가진 인물은 몇이나 등장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작품의 인물들은 각종 범죄와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인상적인 사실은, 이들이 결코 예의범절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지키지 않는 무뢰배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범죄와 악행은 순간의 일탈이 아닌 엄연한 직업이며, 그렇기에 이들에게선 예의와 격식과 절차를 준수하려는 정상적인 면모가 끊임없이 발견된다. 그 면모가 드러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말’이다. 이들은 너무나도 정상적인(이들의 비정상적인 삶을 살펴봤을 때,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상적이라는 점에서만 비정상적인) 존대와 친절의 언어로 소통한다.


말(뉘앙스와 같은 반언어적 요소까지를 포함한)이라는 것이 발화 시점에서의 화자의 생각과 의사뿐만이 아닌, 화자의 심성과 인격까지도 드러내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본다면, 이 작품 속 인물들의 말은 오히려 말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의 삶과 도덕성과 인격을 제대로 투영하고 있지를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와 관객들의 귀에 내내 들어오고 있는 것은, 그저 ‘소리’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무서워하는 초희를 위한 박수 소리, 죽지도 않고 늘 한 자리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위해 무심히 계란을 내려놓는 비닐 소리, 사라진 초희를 찾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내뱉는 호흡 소리 등, 주체의 진심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이 소리들이야말로 다른 인물들의 말보다도 더욱 진실한 ‘말’이다. 그렇기에 사전적 관점에선 도통 말을 하지 않는 태인이야말로 현상학적 관점에선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어른이다.


자신의 삶과 본질을 포장하며 사회적인 척, 정상적인 척을 하는 ‘소리’를 내지 않고, 내면의 감정과 마음이 고스란히 실린 ‘말’을 내뱉은 태인은 결국 쫓기고 도망가는 신세로 전락한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이 저지른 명백한 범죄들에 대한 죗값인 동시에,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소리도 없이 말을 쏟아낸 순수함에 대한 신의 꾸지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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