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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Jul 30. 2023

우린 모두 빚진 자들입니다

소망을 하나씩 이루면 빚은 저절로 갚아져요

몇 해 전 문인들과 사막 여행을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생에 경험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막 위를 안전벨트도 없이 지프로 달리다가 사구 아래로 꼬꾸라지는 듯한 지프의 곡예에 허리를 다칠 뻔 한 일도 있었고, 오아시스에서 잘하지도 못하는 수영을 한답시고 다이빙을 하고는 코로 물이 들어가 이마가 매웠던 일도 있었습니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그런지 밤하늘 별은 정말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이 가까워 밤도 이렇듯 깨끗하고 맑을 수가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죠. 새벽 사막 끝에서 붉게 떠오르는 해는 어떻고요, 그렇게 오래도록 해를 바라만 보다가 경탄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아마 그런 일은 내 평생 두고두고 없을 것입니다.

텅그리사막.J.

그런 특별한 많은 경험 중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남아 나를 성장케 한 일이 있는데요, 도시로 나오기 하루 전 숙소 너른 마당에서 풍등을 날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일행들은 아주 소중한 마음을 다루듯 정성껏 한 자 한 자 풍등에 소원들을 썼습니다. 그 모습들은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듯했습니다. 기독교인인 나도 풍등에 소원을 적었는데요, 쓰는 동안 기도 편지를 쓰는 듯 사뭇 진지해졌답니다. 여행 동안 들떠있던 마음에 감춰져 나오지 못했던 묵직한 소망이 그때 제 진심을 타고 올라왔어요. 그렇게 진지함으로 가득 찬 즐거움이 기쁘기도 했습니다.      

풍등이 하늘에 잘 오르려면 바람이 알맞게 불어줘야 한답니다. 관계자 말로는 다행히 바람이 적당히 불어 풍등 날리기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각자의 풍등을 들고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풍등 하나하나가 마치 하늘에 별이 되어 박히듯 검은 하늘에 불빛으로 수를 놓는데 그 광경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풍등.J.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키가 작아 그런가 내 천등은 잘 날지 못하고 자꾸 기우뚱 거리며 내려오려고 하는 겁니다. 재미를 즐기는 행사라고는 하나 소원을 적은 만큼 하늘로 오르기를 더딘 내 천등을 보니 마음이 졸여져 안타까웠습니다. 그때 일행 중 키가 가장 큰 선생님이 달려가 내려오려는 내 천등을 높이 쳐들어 바람을 잘 타게 해 줬습니다. 덕분에 내 천등도 하늘로 하늘로 날아 별이 되어 박혔습니다.      

아직도 내 마음엔 그날 그곳에 새긴 내 소망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 천등에 적은 소망이 하나 이뤄질 때마다 그날 내 천등을 하늘로 올려준 그 선생님의 쭉 뻗은 손과 천등을 올려주기 위해 점프한 그 뒷모습이 생각나고 고마운 마음이 우러납니다.     

십자가로 만든 십자가. J.

그럴 때마다 깨닫습니다.     

"소망을 이룬다는 건, 내 이웃의 마음들이 보태졌을 것"이라고.     

기독교에서는 "중보기도"가 있습니다. 다른 이의 바람을 함께 소원해 주는 일이죠. 다른 사람을 위해 함께 빌어주는 일은 그 대상과 동화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압니다.


이시형 박사님은 「어른답게 삽시다」에서 당신이 살아오면서 선한 이들의 힘이 보태져서 알게 모르게 당신의 삶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며 그 모든 것들이 삶의 빚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빚은 갚아야 하는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 빚을 죽기 전에 갚으려고 한답니다. 사람마다 진 빚이 다르며 갚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이시형 박사님은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많은 지식들과 지혜들을 얻을 수 있었음에 그것들을 다시 알려주는 것으로 되돌려 주고 떠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함에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라고.

    

사람들에겐 모두 풍등을 올려 준 키다리 아저씨가 있지 않을까요?     


내가 진 빚을 생각해 봤습니다. 가난한 학생이라고 부잣집 아이와 차별하지 않고 내 재능을 알아봐 준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담임 선생님을 비롯하여 상황상황마다 나에게 이로움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주었던 많은 이들. 그들로 인하여 지금 내가 만들어지고 살고 있나 보다 생각하니 물질보다 더 큰 빚이란 생각입니다. 그러니 인생 반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 하나하나 갚아 나가야 하지 않겠나, 문득 마음이 급해집니다.     

나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준 분들은 물론 예배당에 무릎 꿇고 기도해 주는 분들도 모두 재작년 내 천등을 하늘로 올려 준 키다리 아저씨입니다. 그러니 내가 세상에 은혜를 갚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빚진 자들입니다.      

빚은 갚아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빚을 갚기로 해요. 소망을 하나씩 이룰 때마다 그 빚은 저절로 갚아지지 않을까요?


오늘 하늘은 유난히 맑았습니다. 맑은 하늘처럼 마음도 맑아서 고마웠습니다.

하늘. J.


- 2021. 겨울 씀. 2023.07.30. 수정. 체칠리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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