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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Aug 08. 2023

워커힐

소명

나는 꽤 오랫동안 워커를 신고 다녔습니다.

신발도 옷처럼 상황별 어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빨간 킬힐을 신으면 마음이 화려해지고 검정 킬힐은 커리어 우먼 느낌이 짙고 운동화는 건강해 보이고 워커는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어 중성적으로 변하는 느낌입니다. 내가 워커를 즐겨 신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강사 시절 마음과 달리 연약해 보이는 외모를 희석하기 위해 워커를 신었습니다. 신고 보니 정말 편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워커는 굽이 통째로 높아 여름 장마철 물이 고인 곳을 건널 때도 젖지 않아 좋고 눈 오는 겨울엔 발이 시리지 않아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복장과 상관없이 오직 신발은 워커였습니다.


어제 지인과 통화 중에 인생이 전투라며 그도 늘 워커를 신고 다닌다는 말을 했습니다. 내 워커 시절을 생각하니 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인생을 전투적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복장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워커를 신고 언제든지 세상과 맞짱 뜰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내 한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운동화를 신어도 워커 신은 듯하고, 킬힐을 신어도 워커 신은 듯 했습니다. 슬리퍼를 신어도, 단화를 신어도 그랬습니다. 아마 마음이 전투적이었겠지요.


마음에 늘 워커.

평사원에서 대리로, 대리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차장으로... 초고속 직위가 오르면서 워커만이 답인 듯 무장을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조금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잘 살아내기 위한 마음이 곁든 것이라고 위안을 합니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께서는 ‘사람이 태어난 이유는 하늘이 준 소명을 감당해 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직업도 소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이 준 소명에 굳이 전투적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얕은 검정 센들을 신어야겠습니다.


모두 주어진 소명을 잘 감당하는 오늘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2022.03.23. 체칠리아정


출처 :연화진 " Feel Story ..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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