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필자는 K해외봉사 팀에 합류하여 방글라데시 편에 몸을 실었었다. 방글라데시는 아시아 서남부 인도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으로 정식 명칭은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Bangladesh)이다. 약 1억 7,0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수도는 다카(Dacca)이다. 언어는 벵골어를 쓰며 종교는 이슬람교가 가장 많고 힌두교 신자도 조금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세계무역통계에 따르면 국민총생산은 2,057억 달러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1,286달러라고 한다.
살기 어려운 나라지만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방글라데시,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방글, 미소 짓게 하는 행복한 나라에서의 8일간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이번 캠프 일정은 ‘통기바리’, ‘로호정’, ‘도하르’, ‘다카’등을 이동하며 각 지역의 초 ‧ 중 ‧ 고 학교를 방문하는 일이다. 외벽 페인팅과 학용품을 전달, 예체능 수업과 명랑 운동회, 제례시장 벽화 그리기‘, ‘도심 환경 정화 운동’, ‘담요 기증’등 ‘의료봉사’까지... 또 섬마을 천막 학교에는 건물을 지어주는 약속도 이었다.
캠프 일정 외에 이곳 방글라데시의 환경과 원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이런 풍경들을 틈나는 대로 담아 봤다.
통기바리 표정
출발 당일 한국은 강추위로 공기마저 꽁꽁 언 강추위를 보였는데 방글라데시는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와 비슷했으며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기온차를 보였다.
홍콩을 경유하여 약 7시간 밤을 건너 도착한 다카 공항. 사전 정보는 있었으나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좁고 복잡했다. 안개 같은 먼지로 자욱했으며 그 사이사이로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뒤엉켜 마치 미지의 공간에 홀로 갇혀 있는 듯했고, 주변과 내가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낯섦을 안은 채 첫날 목적지인 통기바리로 향했다.
통기바리의 숙소는 한창 공사 중이었다. 숙성되지 않은 시멘트 날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여 낯섦은 더 했다. 다행히 주최 측 배려로 여자 숙소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2층 양옥집으로 정해 졌으나 좋은 숙소에 비해 우리 잠자리는 준비해 간 침낭 속이어야 했다. 그렇게 낯섦을 부둥켜안고 방글라데시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통기바리의 아침은 희뿌연 먼지 속에서도 코끝 상큼한 간지러움이 있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 얼굴도 그런 속에서 상큼했다. 덕분에 전날 느꼈던 낯섦은 덜했다.
통기바리 소녀_낯선 땅에서 처음 만난 아이
아이는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셀피! 셀피!
첫날 아침, 첫 아이,
내 손을 이끄는 소녀에게
마음이 먼저 건너갔다.
먼 느낌, 낯섦이
오히려 낯설었던,
뿌연 아침 공기에도 눈빛이 환한 소녀,
히잡 속 까만 눈동자와
하루 종일 셀피하던 날,
* 방글라데시의 시골 작은 마을
- 정온유 <셀피_통기바리*에서> 전문
아이들은 흙길에도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 내가 본 아이들은 모두 슬리퍼를 신었는데 그나마 사는 것이 조금 나은 집 아이들이라고 했다. 맨발인 아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흙으로 범벅이 되었어도 마냥 즐거워했다.
이 아이들은 이날 몇 시간을 나를 따라다니며 “셀피(우리나라 셀카와 같은 말)”, “셀피”를 외쳤다. 그런 중에도 수줍게 눈망울만 껌벅이는 아이가 있어 카메라에 담았다.
소년은 아이들과 무리에 있다가도 홀로 있고 홀로 있다가도 무리에 가 있고 하며 입가에 항시 미소를 띠고 나를 따라다녔는데 무심한 듯 웃는 듯 한적한 시골 마을이 갑자기 북적 된 것이 본인도 낯설지만 반가운 모양이다.
내가 카메라를 대니 수줍은 듯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몇 시간을 숙소 마당에서 아이들과 ‘셀피 놀이’를 하는 동안 마을을 대표하는 현지 어른들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나왔다.
마을을 대표하는 수장 들이라 그런지 복장은 일반 사람들보다 단정하고 격식이 있어 보였다. 어떤 이는 기도 복장 차림으로 나온 이도 있었다. 복장에 대해 물으니 격식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복장 그대로 나왔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고 반긴다고 한다. 우리가 간단한 형식의 행사를 마치고 일정을 위해 출발할 때도 이들은 우리에게 풍악을 울려 주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즐겁고 고마웠는데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이방인들에 대한 경계 없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카메라를 드니 멋쩍은 듯 외면이다
카메라 속 자신을 발견한 것일까!
나를 외면하듯 고개를 돌린다.
멋쩍은 실룩거림이란
어색함을 외면하는 것,
끈 나간 슬리퍼는 소년을 버텨내고
소년은 카메라와 거리를 버티고.
주머니 꾹 찌른 손은
지금.을, 버티고 있다.
- 정온유 <딴 짓> 전문
방글라데시 흔한 교통수단, 릭샤
이곳에서의 교통수단은 대부분 릭샤를 이용했다. 릭샤는 인도나 방글라데시, 동남아시아에서 흔한 이동수단으로 우리나라 경운기 또는 리어카를 개조한 듯한 모양을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동안 거의 이 릭샤를 타고 다녔다. 리어카만 한 공간에 두 사람 씩 마주 앉으면 무릎이 맞닿을 정도의 공간이었는데 덜컹거리며 흙길을 가는 묘미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방글라데시는 비포장도로가 많다. 큰 대로변 아니면 거의 흙길이다. 그래서 그런지 흙먼지가 마치 안개 낀 것 같이 시야가 넓지 않았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목이 칼칼할 정도로 공기층이 뿌옜는데 현지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익숙했다. 그저 우릴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반겼다.
그들은 모두 웃는 얼굴이다. 먼지 때문에 입을 가리고 웃거나 하지 않는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우리는 기꺼이 그들의 즐거운 구경거리가 되어 주었다. 이들에겐 그저 우리가 이방인이라는 것 하나만도 신기한 구경거리다. 그만큼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없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로 인해 우리 역시 즐거웠다.
그들의 환한 웃음과 우리에게 흔들어 주던 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덜거덕 거리며 도착한 통기바리 시장. 시장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중심가라고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읍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만큼 분주하지 않았고 조금 한산했다.
시장은 거의 우리나라 노점상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좌판은 보기 드물었고 작은 상자 같은 곳에 물건을 걸어 놓고 창문 같은 곳에서 주인이 앉아 물건을 팔았다.
시장
이곳은 종교적인 영향으로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담배 역시 보이는 곳에서 피우는 사람이 없다. 불법이라고 한다. 시장 안엔 술집도 없었다. 대신 찻집이 많았는데 믹스커피색을 띤 차를 마시 길래 커피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시장 안, 찻집. 커피보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짜’라는 차를 즐겨 마시는데 홍차를 우려낸 물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는 차라고 했다. 삼삼오오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들이 우리나라 포장마차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하여 재밌기도 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본 가게는 찻집이었고 사람도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찻집이었다. 그만큼 이 나라 사람들은 차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이런 이들의 생활은 모두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패턴이라고 현지인은 말을 전했다.
나는 다시 조금 더 걸어 시장 입구 쪽으로 가 보았다.
이발소
이발소가 보였다. 우리나라 옛날 이발소와 비슷했는데 손님은 없고 주인도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행인만 보였다. 이곳 시장에서 본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주인과 손님이 구분이 안 간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외국인이라 구분을 못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저렇게 비워놔도 괜찮다고 한다. 이런 풍경만 보더라도 사람을 향한 마음들이 막힘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생선 파는 남자
시장 끄트머리쯤에 생선 골목이 있었는데 얼음 위에 올려놓고 파는 우리 시장과는 달리 솥뚜껑 같이 넓은 접시에 놓고 손님이 오면 이곳에서 즉시 손질해서 팔았다. 생각보다 비린내는 심하지 않았고 저렇게 하루 종일 있어도 생선은 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기후와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밝아진 세상 한 곳
통기바리 시장 골목 낡은 벽에 페인팅을 했다. 현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벽을 칠하고 손문양을 찍어 벽화를 완성하는 일은 세상에 꿈을 찍는 일이었다.
서툰 몸짓으로 서툰 낯빛들이 모여 서툴게 이어가는 색들이 통기바리 시장 골목을 넘어 세상을 온통 환하게 했다.
신부와 소년
통기바리** 시장 골목에 페인팅이 한창이다.
한국 아이 방글라 아이 모두가 신이 났다.
서툴게 이어가는 세상,
서툰 몸짓 서툰 낯빛.
신부의 어깨 위에 목말 탄 소년이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은 곳을 향한다.
아이를 안은 세상은
서툴지 않고 온전하다.
- 정온유 <신부와 소년_꿈을 찍는 아이> 전문
이번 K캠프 단장인 이정호 신부(남양주 외국인복지관장)는 소년 한 명을 안아 올려 가장 높은 곳에 손페인팅을 찍게 했다. 아이는 아마 손보다 꿈을 먼저 찍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세상은 충분히 헤아렸을 터, 나는 믿는다. 이 아이가 이날 찍은 손페인팅 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리라는 것을.
현지 지역 주민들에게 곡식 나눔
이곳은 방글라데시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깊은 시골마을이었고 더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곡식을 나눠 주는 일 또한 우리 몫이었다.
곡식을 받아 올리는 손들이 사뭇 떨렸다. 눈물을 보이며 받아가는 한 아주머니의 눈빛이 우리 캠퍼 한 사람의 눈빛과 마주쳤다. 이들은 무언의 눈빛으로 어떤 말을 주고받았을까, ‘힘내세요.’, ‘고마워요’ 이런 말이었을까? 나는 그저 이들이 지금껏 봐왔던 것처럼 방글방글 웃으며 살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이렇게 통기바리 시장 골목이 환해졌다.
세상 한 곳이 환해졌다.
방글방글 방글라
앞서 말했듯이 방글라데시는 인구의 80%가 넘게 이슬람교를 갖고 있다. 방글라데시를 알면서 기독교인 나는 이슬람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릴 수 있었다. 그동안 방송을 통해서만 보았던 격하고 무서운 그런 단체가 아니라 격조 있고 신성함을 중요시 여기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말이다. 이들의 생활은 모두 종교와 밀접하다. 종교적으로 생활하고 종교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본 그들은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성직자였다. 하루 세 번 5분 식 동시에 기도를 하는 일,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음식을 가려 먹는 일, 술담배를 하지 않는 일, 등. 또 우리가 숙소에서 주일을 맞아 예배를 드릴 때도 그들은 우리를 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슬람인 그들이 십자가 조각상을 구해 와서 우리 캠프 단장(성공회 신부)에게 선물하는 배려까지 보인 모습이었다. 참 의리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입견보다 무서운 것은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 풍경이었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고 오히려 반겼고 환영했고 방글방글 웃어 줬다. 나는 그들에게 “방글방글 방글라”라는 말을 가르쳤다. 그들은 재밌게 따라 했다. 그들이 가난함에도 행복지수가 왜 높은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