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대사는 앤이 야외 수업 중 인디언 부녀를 만났는데 집에 방문하고 싶다는 앤에게 인디언 소녀 카퀫(바다별)이 자기 집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나도 우리 집을 알려 줄 때 꾀나 낭만적이게 알려줄 수 있을 텐데 도시가 돼 버린 이젠 설명도 삭막해졌습니다.
재작년 가을 연변에서 손님이 왔었는데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하고 혹여 낯선 땅에서 길을 헤맬까 걱정되어 제 딴엔 대충 알려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자세한 길 안내를 장문의 문자로 보냈었죠.
"1호선 종각역 11번 출구로 나와서 100m 정도 직진으로 걸으면 4거리가 나와요. 구둣방을 왼쪽으로 끼고돌아.... 어쩌고저쩌고"
몇 분 뒤 연변손님으로부터 답문이 왔습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너무 복잡해서 못 찾아갈 것 같습니다. 다음에 뵈어요."
배려는 상대 입장과 내 생각이 잘 맞았을 때 어울리는 말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앤에게 카퀫은 그런 면에서 훌륭한 친구입니다.
ㅡ 잠실이나 강남에서 00번 버스를 타고 한 참을 오면 복잡한 도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카시아꽃 향기가 차창 안으로 물씬 풍길 겁니다. 그 쯤 되면 반은 오신 거예요. 버스는 OO천을 옆구리에 끼고 달릴 겁니다. 널따란 하늘과 만나는 벌판이 보이면 거의 다 온 거예요. 다시 번잡한 도시가 나올텐데 유명한 대형마트를 지나고 육교를 지나자마자 첫번째 정류장에서 내리세요. 정류장 첫 번째 골목으로 천천히 걸어오다보면 짙은 밤색 나무대문이 나올 거예요. 얕은 담장 안으로 어떤 여인이 테라스에서 책을 읽고 있을 텐데, 제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들 겁니다. ㅡ
아니, 그냥
ㅡ 버스를 타고내처 주무세요. 승무기사님이 깨울 때 일어나셔도 됩니다. 그리고 전화 하세요. 모시러 갈게요.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