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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Nov 03. 2023

빌딩숲에 바람이 불면

항복점

새벽, 4시 30분.

책가방을 챙깁니다.

문학책 한 권을 챙기고, 문제집 두 권을 챙깁니다. 안경과 기화펜을 챙기면 끝입니다.


오늘은 내게 휴식을 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집 근처 스카에 왔습니다.


사람마다 갖는 휴식이 다르겠지만 저의 휴식은 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멍 때리는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제게 있어 휴식이라 함은 휴식이 필요하게 만든 그 상황에서 몸을 바꿔보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하다가 힘이 들면 문제집을 덮고 글을 쓴다든가, 그러면 공부로 벅찼던 뇌가 쓰는 일로 한결 부드럽고 편안해집니다. 반대로 글을 쓰다가 힘이 들면 수학공식을 풉니다. 그러고 나면 허허벌판에 놓인 것 같은 저의 뇌는 다시 탄성을 얻습니다. 그것이 휴식이 됩니다.


오늘은 그동안 직장 일로 수축 됐던 몸근육과 마음근육을 조금 느슨하게 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책가방에 문학책과 문제집을 같이 넣어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이러면 된 겁니다.

책을  읽는 시간은 나를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챙기지 못했던 나를 알아보고 내 속에 웅크리고 있던 나를 꺼내와 다독이는 일, 영혼과 대화하는 일입니다. 나를 키우고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휴식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함으로 다시 탄성 있는 내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탄성 잃은 하루를 회복하는 날로 정합니다.




빌딩숲에 바람이 불면

   - 항복점  


 

/ 정온유



어둠을 넘어서면 해무리에 다다른다

넘어선 시간에 양보란 이미 없다

팽팽히 맞서다 멈춘,  

아쉬움만 자란 자리  


살얼음 걷는 걸음 잇따르는 차가움에

마음 놓친 말들이 마음을 뒤따르며

춤추듯 출렁이다가  

안간힘을 쓰다가,  


빌딩숲에 어둠이 겹겹이 내리면

견뎌낸 마음들이 서류처럼 쏟아지고

탄성을 잃은 하루가

고요히 넘어간다



- 인터넷 신문 <토문재에서 만나는 詩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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