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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Jan 01. 2024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시편 1장 3절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오래도록 사용하는 제 카톡 프로필 한 줄 소개글입니다. 그리고 핸드폰 컬러링이기도 했죠.

말만 하여도 하는 일마다 두루 잘 될 것 같은 주문 같은 문구입니다.



바로 어제인데 벌써 작년이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문구의 시가 있습니다.

화자는 노인 두 분입니다. 시 속 화자들은 세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꼭 청량리서 제기동 온 것 같지?"


시인과 시의 전문은 기억나지 않지만 세월에 대한 이 정의는 잊히지 않는 시구입니다.

청량리와 제기동은 버스나 지하철로 한 거장 거리입니다.

세월에 대해 이렇게 명료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요? 이 시구절에 덧대어 설명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군더더기가 될 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당시 이 시를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시의 낭송이 다 끝나고 낭송자가 자리에 돌아와 앉을 때까지 침묵으로 감상평을 대신했던 기억입니다.

그래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새해가 밝았네요. 저는 집에서 일출을 맞이했습니다. 발코니창 너머 철마산 봉우리에서 솟는 해를 맞이하며 처음으로 소원을 빌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사소함에도 간절해지는 가 봅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반칠환. '새해 첫 기적' 전문


이 시를 보면 머리 검은 사람만 아등바등 새해를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해마다 첫 계획이 '올핸 느슨하게 살자'였으나 단 한 번도 지키지 못 했습니다. 아직은 열심히 살 때라는 증거이겠죠.



2023년엔 이곳 브런치에서 참 좋은 인연 몇몇 분이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읽고, 쓰는'이들이 모인 매체라는 것에 저에겐 너무도 합당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맺어진 인연은 귀하여 여기고 오래오래 이어갈 생각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방문객' 전문


십여년 전 이 시를 처음 만나게 된 날도 저는 저 시가 내 몸으로 들어와 한 번 휘돌아 가는 듯한 울림을 받았더랬습니다.

그 울림 덕분인지 아직도 저는 내게 오는 많은 인연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는 철든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작년엔 많이 아파서 입원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올핸 우선으로 건강을 빌었습니다.

그간 '건강'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뭉뚱그리며 구체적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건강'을 생각하면 내 몸 갈피갈피를 살피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그러므로 감사하고, 그러니까 감사하고... 그러다가 그래서 다행이고, 그러므로 다행이고, 그러니까 다행이고... 를 말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 낸 것은, 나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이들과, 나를 응원해 준이들, 그런 마음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 줄 것을 약속합니다. 그래야겠습니다. 신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내가 아는 모든 이들,

하는 일마다 잘 되시길 바랍니다.

2016년 텅그리사막 여행 때. 사막에서 맞이한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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