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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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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Nov 14. 2023

딸이 그린 미완성 순자 씨의 손

딸은 배우지 않았어도 조금 할 수 있는 잔재주가 좀 있다. 그중 그림을 그리는 재주도 있는데 취미 측에도 끼지 않는 재주다. 전문가가 보면 낙서라고 흉을 볼 테지만 딸은 가끔 심심풀이로 그런 낙서 같은 재주를 부린다.


몇 해 전에는 사람 손을 그리는 것에 빠져 살았다. 아가 손, 신혼부부 손, 기도하는 손, 막노동 손... 그렇게 순자 씨 손도 그때 그리게 됐었다. 딸이 순자 씨의 손을 자세히 보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완성인 상태이기도 하다.     


거친 피부야 그렇다 손 치더라도 바깥으로 심하게 꺾어진 새끼손가락과 유난히 툭 불거진 양손의 엄지 마디는 딸로 하여금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게 했다. 딸은 그런 순자 씨 손을 그림에서라도 곱게 하려고 했으나 아무리 선을 곱게 하려고 해도 순자 씨의 손은 고와지지가 않았다.      




순자 씨는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여자다. 그중 가장 오래 한 일은 가죽공장에 다닌 일이다. 가죽은 평수가 많이 나와야 단가가 높게 잡히기 때문에 순자 씨가 하는 일은 물 먹어 축축한 가죽을 온갖 힘을 다해 잡아당기는 일이었다. 그 일을 십수 년을 했으니 손가락 뼈마디가 온전할 리가 없다.    

  



딸은 순자 씨 손을 자세히 본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의 긴 머리를 땋아주고 딸의 얼굴을 씻겨 주고 밥을 해주고... 그런 손을 한 번도 자세히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희고 가늘고 고왔을 순자 씨의 손가락을 생각하니 이렇게 망가손을 그린다는 것도 완성한다는 것도 고통이다. 그렇게 미완성 상태로 몇 해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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