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가 고향인 순자 씨는 열몇 살에 서울로 상경하여 어느 부잣집 베이비시터로 있었다. 주인집 여자는 순자 씨를 가족처럼 아꼈다. 순자 씨는 주인집 여자를 언니라고 불렀다. 순자 씨가 돌보는 주인집 아이도 순자 씨를 이모라고 불렀다.
시골아이 답지 않게 곱게 생긴 순자 씨에게 주인 언니는 월급 외에도 옷이며 신발이며 따로 용돈도 챙겨 줄 정도로 순자 씨를 좋아했다. 순자 씨의 아이 돌봄이 정성스레 보였을 터였다. 순자 씨는 그런 사람이니까. 항상 맡은 일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순자 씨를 주인 언니가 알아봄이었을 터이다.
주인집엔 아기를 돌보는 순자 씨 말고 집안일을 돌보는 가사도우미도 있었다. 가사도우미는 나이가 좀 있었다. 둘 다 그 집에서 같이 살았다. 집 안에서 큰소리 한 번 나지 않고 잔잔하고 평화로웠던 건 주인집 사람들이 인품이 있어서라고 순자 씨는 말한다. - 이 부분은 딸도 긍정이 가는 부분이 있다.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순자 씨네 집으로 그 옛날 순자 씨가 돌보던 사내아이가 다 큰 청년이 되어 이모집이라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낯선 남자가 순자 씨에게 이모라고 부르며 딸에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으로 봐서도 그 주인집 사람들의 성품을 고스란히 짐작할 수가 있다. - 순자 씨가 결혼 할 때 동생 시집 보내듯 그 집에서 함을 받았고 살림살이를 챙겨 줬을 정도였다. 순자 씨는 지금까지 은인으로 생각한다.
경상도가 고향인 경화 씨는 서울로 상경한 지 좀 됐다. 서울 가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고향 부모님과 누나 동생들에게 큰소리치고 올라와 시청 공무수행 운전과 통금시간 순찰일을 했다.
그날도 경화 씨는 통금 순찰을 돌고 있었다. 어느 부잣집 높은 담을 타고 도는데 대문 밖에 다 큰 처녀 둘이서 쪼그리고 앉아 통금시간도 모르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경화 씨는 순자 씨에게 첫눈에 반했고 순자 씨와 친구가 쪼그리고 앉았던 집을 찾아가 순자 씨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매달렸다.
21살 순자 씨와 29살 경화 씨는 그렇게 만나 결혼했다. 순자 씨와 경화 씨는 서로 외로움을 채워 주며 서울살이에 익숙해 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