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몇 해 안 되어 혼자서 백김치를 담그겠다고 겁 없이 일을 저지른 적 있었다. 배추는 지금 생각하면 50 포기 정도는 됐던 것 같다. 시골에서 농업을 하던 형부가 김장철을 맞아 싣고 온 것인데 이렇다는 말도 없이 마당 가득 배추를 부려 놓고 가버린 것이다. 우리 집은 이미 김장을 했다. 형부가 부려놓고 간 배추는 아주 튼실하고 색깔도 좋았다. 마당 가득 산더미처럼 쌓인 배추를 넋 놓고 보고 있다가 궁리 끝에 백김치를 하기로 했다. 요리책에서 본 기억도 있고 이참에 솜씨를 부려보기로 한 것이다.
이미 김장은 했으니 다시 또 이웃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나 혼자 김장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배추가 얼거나 시들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마음이 급했다.
백김치에 들어갈 견과류와 과일, 채소를 준비하고 요리책을 펼쳐 놓고 한 포기 한 포기 김치소가 빠지지 않게 명주실로 묶어가며 온 신경과 마음을 다해 담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 담근 백김치가 색깔도 예쁘고 모양도 예쁘게 큰 항아리로 한가득했다.
혼자서 그 많은 김치를 다 했다는 뿌듯함으로 며칠은 든든했는데 나는 자꾸 그 항아리 속이 궁금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그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곤 했다. 며칠 됐나, 맛이 어떤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김치 이파리 하나를 뜯어먹어 봤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쓰디쓰고 찝찔하고 이건 김치 맛이 아니었다. 세상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이상한 맛이 그렇게 정성을 쏟아 만든 백김치에서 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배추도 배추지만 그 안에 들어간 재료값이 얼마며 내 정성은 또 어디서 보상을 받을 것이며, 이 많은 김치를 어디다 어떻게 버린단 말인가! 하여 속이 상할 대로 상해 잠도 못 잤다. 그 항아리를 들여다보는 게 겁이 날 정도였다. 안절부절못하며 세상 걱정근심은 혼자 다 갖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을 하는 내게 동네 어른 한 분이 오셔서 무슨 큰일이 있기에 얼굴이 그렇게 상했냐고 물었다. 나는 울먹거리며 사정을 말 하니 그 어른이 어디 한 번 보자시며 그 항아리로 갔다. 나는 그 어른이 항아리에서 김치 줄기 하나를 떼어 내어 입으로 가져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치 무슨 중대한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내 온몸 근육과 신경 줄이 내 눈동자로 죄다 쏠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에휴~ 김치가 미쳤네. 괜찮아. 일주일 지나면 아주 맛있게 익어 있을 거야. 그때까지 항아리 뚜껑 열지 말고 있어.”
나는,
“김치가 미쳐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어른이
“그럼~이렇게 한 바탕 미치고 나야 제 맛을 찾아. 아유~ 걱정 말아. 맛있겠구먼.”하며 웃었다.
정말 마법처럼, 그 어른 말처럼 김치는 일주일 뒤에 엄청난 맛을 갖고 내 마음고생에 보답을 해 왔다. 정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해 겨울 나는 오로지 그 백김치랑만 밥을 먹었다. 며칠을 앓아누울 정도로 마음고생 한 것쯤이야 괜찮았다. 맛있는 것으로 다 보상이 되었다.
그날 이후,
‘김치가 미친다고?’에 대해 생각의 굴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치가 미치는 건 철학이다.
무엇 하나 미치는 과정 없이 온전히 바로 서기는 힘들다. 미치는 과정은 성숙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어른이 되면서 깨닫는다.
미치는 과정은 항상 혼란스럽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그 몸부림을 지독하게 “잘” 앓고 나면 더 나은 성숙한 모습들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역사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사람 관계, 특히 남. 녀 관계가 더욱 그렇다.
서로 “잘” 미쳐 보자. 못 견뎌서 망가지지 말고 잘 견뎌 보자.
이 겨울 “잘 미쳐 보자.” 그래서 내년 봄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관계로 거듭나 보자. 그러면 더 견고하고 단단해진 관계가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