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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원 Sep 13. 2020

내가 우주 최강 소심이라고 느껴질 때

오늘도 없는 인싸력 끌어모으느라 힘들었다면

 언제부터일까. 우리가 MBTI에 이토록 집착하게 된 것이. MBTI 성향별 빙고부터 심지어 차이를 부각시킨 웹드라마까지 없는 콘텐츠가 없는 요즘 세상이다. 16가지 조합 중에서도 가장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건 외향형이라 불리는 E와 내향형이라 불리는 I 아닐까.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인싸를 E, 아싸를 I라 부른다. 내가 처한 그때의 상황에 따라 E가 나오기도 I가 나오기도 하는데, 사실 E가 나오기라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I는 늘 환영받지 못하는 축에 끼는 것 같았으니까. 


 스무 살이 되고부터 N년 내내 나를 ‘인싸가 되고 싶은 슬픈 아싸’라고 굳게 믿었다. 어찌어찌 짜낸 농담에 아무도 웃지 않을 때, 동기들이 나만 빼고 만났다는 걸 인스타에서 확인했을 때. ‘아, 저들은 태생이 인싸라 하하 호호 잘도 어울리는구나. 내 걱정은 아무도 안 하는 거지.’ 하고 단념했다. 그렇다고 대학 4년 내내 아싸로 다닐 만큼 강철 멘탈은 아니었다. 항상 겨우겨우 인싸들의 모임에 껴 있다가 집에 가는 길에 혼자 상처 받곤 했다.


 갈팡질팡 헤매는 나에게 괜찮다는 어설픈 위로나 사회에 맞게 성격을 바꾸라는 팩폭은 전혀 도움 되지 않았다. 나를 벗어나게 해준 건 다른 사람들도 다 나 같은 걱정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모두들 행여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눈치 보면서 조바심 낸다는 사실. 이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고, 오랜 역사가 증명해주는 나만의 통계 결과다. 오랜 역사는 어디에서 발굴했냐고? 바로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으로 부터다. 분명 70년대 얘기인데 대학 생활, 꿈, 미래 등의 소재와 사람들의 생각이 지금이랑 똑 닮았다. 20대는 시대와 무관하게 각종 걱정을 껴안고 사는구나 싶었다. 책 중에도 이런 문구가 있다. 


“사람 사는 집은 다 비슷하단 사실이 놀랍고 유쾌했습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 작가정신


 출판사의 서평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사랑과 결혼의 잣대란 도대체 무엇이며, 진실이란 우리에게 얼마만 한 기쁨이고 슬픔인지를 작가 특유의 신랄하고도 친근한 문체로 보여준다.' 박완서 작가가 70년대 신문 등지에 실었던 짧은 기고글 등을 모은 책이다. 책은 꽤나 두껍지만 글 한 편 마다의 호흡은 굉장히 짧아 읽어 나가는데 부담이 없다. 심지어 아주 재밌다. 내용과 문체 자체도 재밌거니와 '아니, 이 때도 그랬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술술 읽힌다. 이 책의 첫 문장이 책 전체의 느낌을 설명해준다.


"상철은 자기가 일등 신랑감이라는 걸 너무 믿고 있었다.'


 70년대를 열렬히 살아낸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회 문제, 에피소드들이 담겨있지만, 비관적이진 않다. 작가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도 인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느라 고생했다면, 짧지만 여운 가득하고, 에세이가 아니지만 쉽게 읽히고, 재밌고 생각할 거리도 있는 유니콘 같은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라. 


 그리고 한 가지 새내기 혹은 대학생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 앞으로 낯설고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 수없이 놓일 당신에게, 비슷한 일을 먼저 겪었던 동지로서 한마디 하고 싶다.부디 부적응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지 말길.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인간관계들이 있더라. 한정된 사람들 안에서 아등바등 인사이더가 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을 필요로 하는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은 동아리, 학회, 교내 근로 등 다양한 곳에 존재한다. 시야를 넓혀보시고 마음 편히 먹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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