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망상
누군가 나에게 '너는 무슨 주의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마디 '바보주의자요' 할 것이다.
세상이 좀 더 바보 세상이 아닌 것이 내 아픔의 원천이다.
할 수만 있다면, '바보세계사'를 한 편 지어
세상을 좀 더 바보 세상으로 만들고 싶은데
부디 나보다 잘 난 바보가 있으면 작업을 한 번 해줬으면 좋겠다.
집안 어르신들이 왁자지껄 모인 자리에서 나와 손아래 동서를 두고,
두 사위가 '아들 바보, 딸 바보인가' 하는 말에,
덜컥 나를 바보로 만드는 어떤 힘이 있음을 느꼈다.
아들내미가 한 살 터울 제 사촌 동생하고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는 더 바보여야 한다, 나는 더 등신이어야 한다고
속으로 바보의 순결함이 부족한 것이 반성이 되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얘기를 하고 싶다.
그동안 이 방송 프로그램이 '외국인의 시각'을 빌려와 익숙한 우리들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해준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마저 반복되어 익숙해져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새로이 초빙된 호주 3인방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화두를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에게 충격처럼 던지고 있음이다. 그들은 느리게 걷고, 별 것 아닌 일에 감동하고,
그것을 표현하고, 멈추기와 기다리기에 있어서 조급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소박한 것 - 가족 -에 가장 무거운 의미를 부여한 채 살아간다.
그것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사고하고 자신이 다음 해야 할 일의 실마리를 거기에서 찾는다.
아, 세상 누군가는 나보다 더 바보 세상으로 한 걸을 더 나아갔다.
그냥 다 주고도, 보상 받은 것이 전혀 없는, 바보같은 상태.
기껏 땀 흘리고도 좋은 말 한 마디 받아 듣지 못한, 머저리같은 상태.
이 잔을 옮겨달라 해놓고도, 결국 내뜻대로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라고 했던 바보처럼
넓은 길 놔두고 좁은 길로 걸어간 바보처럼,
세상이 좀 더 바보가 되어
내가 바보 웃음 지을 때, 너의 바보 웃음이 반겨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