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끝에서 비로소 봄을 배우다

함께 있어야 비로소 완성인 빛과 그림자

by 고요숨결




바람은 매섭지 않으나
2월의 공기는 여전히 차다. 달력 한 장을 넘기면 ‘춘삼월’이라는 말이 가지런히 올라앉겠지만
봄은 이름처럼 그렇게 성급히 오지 않는다.
계절은 늘 제 속도로 걸어오고
우리는 그 뒤를 조금 늦게
알아차릴 뿐이다.

우연히 나눈 대화 속에서 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는 2월의 어느 날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그라운드호그가 굴 밖으로 나오는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 동물이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 겨울이 더 머물고, 보지 못하면 봄이 일찍 온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긴 겨울을 건너는 동안 사람들은 작은 생명의 움직임에 마음을 건다. 계절의 예보를 하늘이 아니라 조그만 생명에게 묻는 풍경이라니 생각만 해도 미소가 번졌다.
나는 그 이야기가 다정해서 좋았다.
계절을 재촉하기보다 계절과 보조를 맞추려는 태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직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봄을 단정하지 않고, 다만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말하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일지도 모른다.
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아닐지 모른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선언이 아니라, 고개를 조금 내밀어 바람을 한 번 맡아보고 빛을 잠시 바라보는 일. 그 정도의 용기면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는 늘 완전한 준비가 끝난 뒤에야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계절은 준비 여부를 묻지 않는다. 그저 때가 되면 바람이 불어오고 햇빛이 비친다.
혹 발밑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빛이 곁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겨울이 길다고 조급할 것 없고,
봄이 더디다고 서두를 것 없다.

계절에는 계절만의 속도가 있고,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누군가는 이미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아직 뿌리내리는 중일뿐이다.

다만 어떤 날 마음이 조금 풀리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스스로 굴 밖으로 나와 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득 알게 된다
빛과 그림자는 서로를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겨울 끝에서 비로소 봄을 배우듯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천천히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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