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 연습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그 위에 덧씌운 나의 해석이었다.

by 고요숨결



살아가다 보면 내가 건넨 마음이 내가 바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갔는데 상대는 그 마음보다 자신의 옳음을 더 크게 말한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조용히 굳어진다.
내 친절이 무시당한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내가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예전의 나는 그런 순간마다 상대를 이해하려 애썼다. 저 사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하고 마음으로는 수없이 되뇌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해하려는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쉽게 편안해지지 않았다.



가슴은 답답했고 어깨는 단단해졌으며 마음은 어느새 방어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것은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누군가의 단호한 말 한마디가 내 안의 오래된 긴장을 깨우면 몸은 먼저 위험을 감지한다.
그래서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바로 풀리지 않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내 몸이 나를 지키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그 위에 덧씌운 나의 해석이었다.



내가 친절했으니 상대도 그래야 한다는 마음
이 정도 했으면 적어도 이런 반응은 돌아와야 한다는 기대, 세상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 그 생각들은 보이지 않는 돌처럼 마음 위에 놓여 있었다.



삶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그 돌을 계속 들고 있으려 해서 더 힘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랫동안 내가 그 돌을 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진실되게 행동하면 상대도 바르게 와야 한다고 믿는 방식과

내가 지켜야 한다고 여긴 관계의 형태.
그 모든 것들이 어느새 나를 지탱하는 기준인 동시에 나를 지치게 하는 무게가 되어 있었다.




고통은 사건보다 내가 만든 해석을 놓지 않으려는 저항에서 더 커졌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아주 작은 틈이 생긴다.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 대신
저 사람에게도 저 사람만의 전쟁이 있겠구나 하고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은 포기가 아닌 수용에 가깝다.




타인을 바꾸려는 애씀을 잠시 내려놓고
내 안에서 올라오는 긴장과 두려움을 먼저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자기 연민이었다.
왜 나는 아직도 이런 일에 흔들릴까 하고 다그치기보다 아 내가 지금 위협을 느끼고 있구나 내 몸이 나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구나 하고 조용히 알아주는 것.
그 다정한 인정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생각으로 해결되지 않던 것들이 몸의 안전감이 돌아오면서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천천히 숨을 내쉬고 몸의 감각을 느끼며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몸이 다시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 역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친절은 나를 소진시키는 희생이 아니었다.
나를 지키면서도 따뜻할 수 있는 길이었다.
당장 어렵다면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괜찮다. 그것 또한 나를 돌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삶은 누군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그래야만 한다를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오래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는 순간 마음은 비로소 가벼워진다.
그리고 비워진 그 자리에 조금 더 따뜻한 내가 다시 앉는다.




마침내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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