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없이도 볼 수 있는 감동 딱히 없는 실화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성어를 아는가? 뜻을 풀이하면 "까마귀가 날아가자 배가 떨어진다"라는 의미이다. 이 글의 제목인 이 속담은 한국인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인데, 정확한 뜻이 뭔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은근히 있어서 나의 일화를 사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오비이락은 인과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과관계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 즉 어떠한 행위가 다른 사건에 영향을 끼쳐야 성립이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배가 떨어진 원인을 까마귀가 제공한 것이 맞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다.(참고로 운송수단 배가 아니라 과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시 발언이라면 죄송)
결론부터 말하면 까마귀는 배를 떨어트리지 않았다. 배나무에 잠시 앉아 쉬던 까마귀가 개인적인 볼일(?)을 보러 날아간 것은 그저 까마귀의 선택일 뿐, 배나무에 달린 배가 떨어지는 건 그와 별개로 타이밍이 겹친 사건일 뿐이라는 것.
까마귀가 날아간 반작용으로 배나무에 힘이 전달되어 낙과(落果)가 유도된 것이다!라는 이과적인 발상도 할 수 있겠으나, 오비이락이라는 성어의 어원은 조선 인조 시기에 등장하였으므로 과학적으로 파고들지는 말자. 까마귀의 비행과 배의 낙하는 별개라는 전제가 이미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이 성어와 가장 부합하는 단어는 '우연'과 '오해'이다. 까마귀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자신은 그저 개인적인 용건으로 날아갔을 뿐인데 '우연'히 배 열매가 떨어졌고, 배나무 주인은 자신을 낙과범으로 지목하는 '오해'를 하고 있다면 굉장히 억울할 것이다. 안 그래도 까마귀는 뭔가 불길한 이미지의 대명사라 그것도 가슴아플텐데...
영화나 사건 프로그램을 보면 하필 범죄현장을 지나가거나 해서 오해를 받는 클리셰가 있는데 명백한 오비이락의 사례다.
때는 6년 전... 내가 강사 생활을 하던 무렵, 퇴근을 앞두고 어머니로부터 백화점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모시러 간 적이 있었다. 가까운 곳이었기에 금방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올라가려는데...
"잠깐만!!!!!"
어떤 아저씨께서 엘리베이터를 향해 전속력으로?! 그런데 천천히 오고 계셨다.(무슨 말이냐면 자세는 빠른 느낌인데 실제 속도는 느렸음) 아무튼 그분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는데 곧 그분이 왜 그렇게 다급하면서도 느렸는지 곧 알게 되었다.
그 아저씨는... 응가가 마려웠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분의 후방 중하단에서 [부욱 뽕 삐립 빵]등의 사운드 효과가 돌비서라운드 뺨칠 정도로 재생되었고 1층에 도착하기 무섭게 아저씨는 내달리셨다.(화장실을 찾으러 갔다에 5천 원 배팅 가능)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엄마는 8층에 계셔서 나는 8층까지 가야 하는데, 어떤 여성 두 명이 탑승한 것. 이게 왜 문제냐면 방귀는 청각 요소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후각 요소도 자극하기 때문.
원래 배변의 한계에 임박했을 때 선방출되는 방귀는 그 냄새가 더욱 진국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새로 탑승한 두 여성은 방귀의 살포자로 나를 용의 선상에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 당연히 나는 이미 타고 있던 사람이니까...(아니, 나도 피해잔데 아...)
이런 표정을 짓고있는 난생 초면의 두 여성에게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후보 발언-
"아, 이게 제가 뀐 게 아니라..."
"아까 내린 아저씨 보셨죠? 사실 그 사람이..."
"당신들은 방귀도 안 뀝니까?"
정답은 그냥 입을 다물고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뿐이다. 즉, 그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다는 점이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그 두 사람은 보란 듯이 코 앞에 손을 휘저으며 나보다 먼저 내렸다. 아! 배를 떨어트린 범인으로 몰린 까마귀의 심정이 이랬을까?
사람 사는 것이 그렇다. 내가 아무리 떳떳하다고 해도 알아주는 이 없다면 고독하고, 나아가 오해라도 받으면 서러운 게 인생이다. 거기서 더 화나는 것은 오해를 풀려는 시도조차 막히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 아니, 쓰고나니 3번까지구나 아무튼...
1. 굳이 의도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2. 내가 느낀 상황만으로 상대를 오해하지 말자.
3. 웬만하면 해명하는 상대를 믿어주자.(무조건 믿는 호구가 되라는 뜻 x)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의 심기를 한 번 거슬리게 하는 순간(교훈 1에 의거하면 의도하지 않게 심기를 건드리는 경우 포함) 그 어떤 해명도 그저 변명이 되고 엎질러진 물을 보는 것처럼 수정과 보완의 기회를 차단당하게 된다. 사실 '변명'이라는 단어는 대화 상대를 무시하는 성향이 강한데, 변명과 정당한 설명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붉은 글자 : 챗 GPT가 이렇게 말했음)
나는 권력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뭔가 오해를 갖더라도 "나를 오해하게 한 네 잘못"이라는 프레임으로 해석의 권력자가 되고 싶지 않으며, 상대의 진심을 알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물론 지나간 말과 행동은 결국 엎질러진 물과 대동소이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 물을 닦을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기회가 된다면 나를 까마귀로 만들어 주신 그 아저씨를 뵙고 싶다. [그때 장 트러블은 잘 해결하셨는지요?] 그리고 배나무 주인 포지션이었던 두 여성분께도 가능하다면 [그 방귀... 제 것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삶은 계란이 생각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