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난처하면 코가 석자가 되는가?

코가 길어진다니... 혹시 피노키오?

by LEMO
코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친구

"내 코가 석자"라는 속담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고 써봤을 이 말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오비삼척(吾鼻三尺)이라고 한다. 여기서 척(尺)은 길이의 단위로 "자 척"이라는 한자인데 1척은 약 30.3cm의 단위이다.


그렇다면 3척은 약 91cm(소수점 첫째 자리 반올림)로 1미터에 약간 안 되는 길이이다. 코의 길이가 91cm에 육박한다는 것은 콧대가 정말로 하늘을 뚫을 기세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 의미는 콧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내 코가 석자는 콧대가 91cm가 아니라 콧물이 91cm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콧물이 흐르면 어른들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코 나왔다 코 닦아라"


여기서 말하는 코가 콧물을 의미한다.


조선 학자 홍만종의 저서 순오지에 수록된 표현으로 원문은 "오비체수삼척"이라고 한다. 다만 이 경우 6글자 성어가 되어버리니 사자성어로 만들기 위해 오비삼척이 되었으며, 여하튼 조선시대에도 사용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콧물이 주욱 매달려있으니 일단 내 콧물부터 닦는 게 급선무이다. 그래서 이 표현은 남을 도울 여건이 안 되는 난처한 상황을 의미하고 있다.



나는 9월 1일부로 퇴사백수가 되었다. 며칠 전 산책 겸 다이소에 갔다가 현금을 정리하러 은행 ATM에 들렀고, 평소 신용카드만 사용하였기에 입출금카드를 쓸 일이 없었는데 너무 오랜만이었는지 입출금카드가 사용불가라고 떠서 어쩔 수 없이 창구에 앉았다.


창구의 여직원은 굉장히 붙임성이 좋은 사람인 듯했다. 체크카드를 만들려는 나에게 신용카드 영업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적을 위해서라면 없던 붙임성도 생겨야 하는 게 직장생활이겠지만...


나는 타사 카드를 사용하고 있기에 추가적인 신용카드 발급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 직원은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제가 실적 때문에 그런데 하나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사람이 좋아 보여서 그랬는지, 그 직원이 응대하는 모든 고객마다 그런 부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사는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은행에 일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카드를 만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재차 거절을 했는데 은행 신용카드가 굳이 필요 없는 것도 맞지만 사실 이제 백수가 되면서 어차피 신용카드 발급 심사가 안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 번의 거절을 하니 그 직원은 그러면 어플 가입이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애절한 부탁을 했다. 데스크 왼쪽에 QR코드가 있길래 어플을 깔고 추천 직원으로 직원 이름을 적어주니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하시길래 몸 둘 바를 몰랐다.(아니 이게 뭐라고?!)


내 주위에는 은행에 다니는 친구가 있고, 은행에서 퇴사한 친구도 있다. 은행 업무가 보이는 것보다 많고 책임감이 필요하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일이 많음을 어렴풋이는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사실 제가 카드를 만들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퇴사를 해서 이번 달부터 백수거든요"


그러자 그 직원분은 눈이 또렷해지며 직장에서 나오니까 어떻냐고 물었다.


"모든 선택이 그렇듯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있겠죠? 몸은 편한데 마음은 사실 불편해요"


체크카드를 만들러 온 사람에게 신용카드를 권유하는 그 직원분도 분명 삶에 애환이 있겠지. 다들 그렇게 버티고 살거나 아니면 박차고 나오거나 할 것이다. 나의 발언에 또렷해졌던 그 직원의 눈빛은 말하지 않아도 나 역시 버티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임을 의미하는 듯했다.


체크카드 발급이 완료되자 그 직원분은 인사 겸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쉬고 계실 때 많이 즐기세요!"


무언가를 즐기는 것도 사정이 돼야 가능한 현실에서 그분의 말을 중의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겉치레로 받아야 할지를 굳이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잠깐동안 여운은 있었다.


"나중에 신용카드 만들게 되면 찾아올게요"

그렇게 은행을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듦을 피력하며 누군가 나를 공감해 주길 바란다. 그럼에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힘드니까, 일단 나부터, 내가 알 바임? 등의 마인드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나 역시 내 글에 라이킷이 많이 눌려지길 바라면서도 남의 글에 라이킷을 누르는 것에는 인색하니 양심상 할 말이 없어야 하는 건 맞다.


서로의 콧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사회를 탓해야 할까? 내 콧물이 더 길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을 탓해야 할까? 글쎄 꼭 누구를 탓해야만 하려나. 애초에 인간 사회가 완벽할 수가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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