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앞에서

효(孝)란 무엇인가?

by LEMO

백수 생활도 어느덧 1달이 되어간다. 여행도 다니면서 잠시나마 여유를 즐기고 싶었는데 여행은 가도 '즐긴다'는 개념은 여간 생기지가 않았다.


며칠 전 아버지는 나에게 같이 벌초를 가자고 하셨고, 그것을 거부할 권리는 나에게 없었다...


남의 묘도 대리 벌초하시는(물론 일당은 받고) 아버지는 분명 벌초를 좋아하심이 틀림없다. 오전에 산에 올라 제초 작업을 하면서 적당히 땀도 좀 흘리고, 정돈된 묘소를 보며 시원함도 느끼면서 새참을 즐기는 것은 어쩌면 추석을 앞둔 무렵에 느끼는 감성 포인트인지 모른다.(물론 아버지 입장에서)


오늘 다녀온 곳도 작업 의뢰를 받고 간 곳이었다. 총 두 곳을 하시는데 나는 아버지가 작업한 곳을 따라 잘려나간 풀 부스러기들을 쓸어내렸다.


11.jpg 벌초하시는 모습

벌초는 사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만큼 오래 걸리는 작업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묘지까지 들어가는 길이 난코스인 경우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벌초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하산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곳이라 한 군데가 더 있었다.


22.jpg 돌이 튈 수 있어서 좀 기다렸다가 이렇게 풀을 긁어모아 버린다.

집에 있었으면 멍하게 누워있었을 시간에 산에 올라 몸을 움직이니 상쾌하긴 했다. 그러나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굳이 나왔을까 싶다. 이유야 당연히 집에 있는 게 편하니까...


사람들은 명분을 찾는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명분, 일을 빠져야 하는 명분, 음식을 시켜 먹는 명분 등등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귀찮음이 가장 크다. 나 역시 갈퀴질을 하면서 든 생각은 '남에게 시키는 벌초는 효도가 맞나?'였는데, 자기 조상 묘는 자기가 관리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지금 내 귀찮음의 명분을 생각한 것 같다.


사실 벌초뿐 아니라 왠지 우리나라는 '조상'하고 엮이면 손이 많이 간다.(살아 계신 조상님 포함) 뭐 당연히 대가족 사회에서 자식 세대들이 손이 더 바쁜 건 어쩔 수 없으나, 돌아가신 분에게도 손이 많이 가는 건 지금 세대들에게 '명분'타령을 하기에 좋은 소재가 아닐런지


여자들의 경우도 그렇다. "남의 조상 제사상을 왜 내가 차려?"라는 의견을 들으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겠는가? 그러나 사실은 명분이다. 실제로는 귀찮은 게 가장 크고 우리 조상 제사상도 차리기 귀찮은건 같다.


대한민국은 국토가 좁아서 매장보다 화장이 좋다는 명분도 있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에 국토가 더 넓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구시대의 낡은 관습이 도마에 오르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유교'이다. 유교라는 단어는 어떤 느낌이 드는가? 보수적이고, 꼰대스럽고, 꽉 막혀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벌초를 하러 산에 올라가고 제사상을 차리느라 주방에 붙어있는 것이 다 유교 때문인 것 같아서 이가 갈릴 수도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면 유교의 핵심 인물인 공자를 혐오하는 단계까지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비약된 평가인데, 원래 유교라는 것은 꽉 막힌 사상이 아니었다. 공자는 수천 명의 제자를 거느리면서도 겸손한 면이 있었고 어떤 말을 했냐면...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배울 점이 있다면 그는 나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했다. 나이로 모든 서열이 정해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유교의 사상과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의 제사에 신경 쓰기보다 살아계실 때 잘해야 한다"라고도 했는데 오히려 현대적인 관점에서 효에 더 가까운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인식은 왜 이모양인가? 내 생각에는 유교가 한반도에 유입된 후 변질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나라의 문제뿐만은 아닌 것이 한 때 이상적인 논리로 만들어진 개념들은 정치권과 엮이면서 변질된 경우가 많으며(대표적인 게 종교 쪽) 애초에 현재의 중국 또한 과거의 유교 사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책부터 태워먹었으니...


33.jpg 벌초가 완료된 묘의 모습

효도를 나타내는 한자 효는 孝라고 쓰는데 자세히 보면 노인을 나타내는 老(늙을 로)의 아랫부분에 자식을 나타내는 한자 子가 있다. 나이 드신 부모를 업고 있는 자식의 모습이다. 꼭 업어드려야 효가 아니라 챙겨준다는 행동으로도 물론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돌아가신 조상에게도 적용을 하자면 납골당을 찾아뵙는 것이나 벌초를 하러 가는 것이나 사실 행위의 본질 자체는 동일할 것이다. 다만 손이 많이 가느냐 덜 가느냐의 차이겠지.


앞서 말한 명분도 그렇다. 장묘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조건일지라도 납골당을 찾거나 직접 음식을 차리지 않는 수준의 편의가 보장된다면 굳이 안 하겠느냐는 생각이다. 물론 실제로 그럴 일은 없으니까 그저 망상이긴 하다.


그런데 조상의 묘를 타인에게 대리벌초 시키는 건 효가 맞나? 아닌가? 나는 그저 효라는 것은 부모 살아계실 때로 한정되는 것이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산 사람들의 심리적인 작용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이 의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언젠가는 벌초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할 뿐.


44.jpg

벌초를 마치고도 아직 오전이었다. 당이 당겨서 딸기라떼 하나를 사 벤치에 앉았다. 월요일 오전의 아파트 근처는 한산했고 거리에는 시험을 마치고 일찍 귀가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내가 직장에서 나와도 아무 일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일도 또 벌초(이번에도 남의 묘)를 가야 한다. 무려 7개의 묘라고 하시는데 벌써부터 너무나도 귀찮구만...!


오늘은 잠들기 전에 쓰다 만 입사지원서를 꼭 제출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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