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울어본 사람 있습니까?

가려고 간 산도 아니고 울려고 운 것도 아니었지만...

by LEMO

최근 일련의 사건(직장, 이성 문제)들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자 밤마다 하던 산책을 낮에 해보려고 집을 나섰다. 이 동네에 6년 넘게 살면서도 산책로를 아직 다 다녀보지 못했기 때문에 밤에 주로 산책하는 둘레길 대신 다른 코스를 택한 것이다.


코스의 입구는 대구수목원의 뒷문과 접해있는데 낙엽을 밟으며 조용히 걸을 수 있는 산책 안내도가 있었다. 문제는 나는 그 길을 처음 가본 것이었고 앞만 보고 무작정 걷다 보니 예상했던 산책로가 아닌 산길로 진입한 것이었다...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왠지 올라가 보고 싶었다. 어차피 지금 나는 남는 게 시간이다. 지금이라면 조난을 당해도 별일 없을 것 같았다.


사부작사부작 낙엽을 밟으며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들리는 소리와 위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청량했다. 월요일 낮이어서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운동부족인 나에게 RPM은 금세 치솟았고 숨이 차는 것을 느껴 중턱의 벤치에 앉았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으니 왜일까 눈물이 한 방울 흐르기 시작했다.


'내 인생은 어쩌다 이렇게 흘러왔을까'

'나는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지'

'내 미래에 희망이란 것은 있을까'


낡은 수도꼭지에서 뒤늦게 물이 뿜어져 나오듯 서서히 눈물이 점차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누군가 본다면 이렇게 쪽팔릴 수가 없다...


눈물을 닦으니까 콧물을 자동으로 훌쩍거리게 된다. 누가 봐도 땀을 닦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총각 뭔 일 있는교?"


웬 아저씨 한 분이 내 뒤에 서 계셨다.


"아닙니다. 그냥 쉬고 있습니다"


"쉬는데 눈물은 와 흘리는교"


그 아저씨는 내 옆에 앉으시더니 차였냐, 잘렸냐 물어보셨다. 맙소사... 둘 다라고 얘기해도 완전히 틀리지 않는 답이다. 이 아저씨 귀신인가?


"그냥 요즘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내 어깨를 툭툭 치시며 다 지나가는 일이다 격려해 주신 아저씨... 그 순간 눈물이 더 쏟아질 뻔했는데 겨우 참았다.


그리고 으레 그러하듯 아저씨 특유의 옛날이야기와 훈수 같은 것들이 몇 분간 쏟아졌다. 다 기억은 못하지만 최대한 경청해 드렸다.

KakaoTalk_20251201_152605561_01.jpg

아저씨께서 먼저 올라가신 후 나도 다시 길을 마저 올라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를 더 걸으니 봉우리에 도착했다. 내가 산을 타지 않아서 그렇지 봉우리가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동네에 살면서 처음 와본 곳이었다.


봉우리 정자에 앉아있으니 아까 얘기를 나눈 아저씨는 기구 운동을 하시며 쿨하게 나에게 손 한쪽을 들어 올리셨고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기분이 오묘했다.


KakaoTalk_20251201_152605561_02.jpg

나무들 사이로 한때 내가 출근했던 길이 보였다. 지금은 대구를 떠난 친구의 집에 가던 길이기도 하다. 이제는 저 길을 지나갈 일도 없이 이렇게 봉우리에 올라 내다보고 있다.


본의 아니게 잘못 들어선 길로 산을 올라버렸지만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만)36살 먹은 사내자식이 눈물을 질질 흘렸다는 건 처참하지만...


사실 나는 몇 년 전 오늘과 비슷한 상황을 [목격]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내려가는데 한밤 중 아파트 놀이터에 웬 청년 한 명이 울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아마 그런 사람을 마주쳐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저 사람 무슨 일 있나'하고 그냥 지나쳤다.


아이스크림을 사고 다시 그 길로 올라가는데 이번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웬 아저씨 한 분이 울고 있는 그 청년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계시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왜냐, 내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아저씨나 오늘 내 옆에 와주신 아저씨 같은 분들도 세상엔 있더라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도 슬픈 일이 있으면 산에 가서 울어보시길... 예상치 못한 위안을(인스턴트 위안일지라도) 얻게 될 지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무덤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