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흔들리는 내맘
강제규 감독의 1999년작 영화 쉬리를 아는가?
한석규, 최민식의 풋풋하던 모습을 볼 수 있는 한국영화의 수작이다.
그 영화에서는 한반도의 전쟁을 위해 테러를 일으키고자 하는 북한 공작원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테러를 일으키려는 장소는 남북의 정상이 모여있는 남북화합 친선 축구경기장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김정은과 남한 대통령이 함께 있는 자리를 폭파시키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북한군이 남한 지도자를 없애려는 것은 납득이 가능하나 왜 자신의 지도자까지 없애려 하는지
거기서 북한 쿠데타군으로 등장한 박무영(최민식 분)은 이런 대사를 했다.
"순진하게도 우린 저 고매하신 정치꾼들을 믿고 지난 50년 동안을 그렇게 기다려 왔어, 근데 불행하게도 정작 저들은 통일을 원하고 있지 않아. 우린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잘 짜여진 연극 한 편을 보고 있는 셈이지"
중학교 도덕에는 북한과 관련된 단원이 나온다.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은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주제이나 결국 귀결되는 것은 한반도는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통일이 불가하다는 의견이다.
왜냐? 만약 당신이 북한의 김정은이라고 치자. 굳이 통일을 하고 싶을까? 가만히 있으면 내가 북한 최고 권력자인데?
그러나 체제 유지를 위해선 결국 쇼를 해야 한다. 인민들에게는 언젠가 적화통일로 낙원을 만들겠다는 거짓말 말이다. 그것에 대한 내용이 위에 등장한 대사이다.
학교 이야기를 하다가 왜 쉬리 이야기를 하냐고? 결국 체제의 유지와 해체는 상황에 따라 누군가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고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것임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 학교 그만두겠습니다.(3)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주말이 다가올수록 나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해져 갔다.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기가 싫었던 것도 맞지만 약속이란 것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나는 교장의 제안을 내 의지로 받아들였지만 마치 부잣집에 팔려가는 고려시대 아녀자가 된 듯한 수치심이 들었다.
출근하면 하루 종일 가슴이 답답했고 교실 문을 열 힘도 없었다. 학생들은 내가 어디 아픈 줄 알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관리도 해야 했다. 결국 토요일에 나는 동생 내외의 집에 방문해서 고민을 토로했다.
내가 감당해야 했던 업무들과 대우, 교장에게 받은 제안 등등... 동생 부부는 비록 학교 일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내가 한 말들을 들으며 그 학교는 나오는 것이 맞다고 얘기했다.
결국 나는 다시 교장에게 전화를 했다. 자꾸 번복해서 죄송한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다만 이 와중에 시간이 흘렀으니 새로 사람을 구할 때까지 8월은 출근하겠다고 말이다.
사직 의사를 밝히고 번복한 후에 또다시 번복한 것이다. 진짜 이런 바보 같은 인간이 또 있을까?
그렇게 다음날 교회를 나가지 않았고 월요일에 출근을 했다. 솔직히 어떤 선택을 해도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백수에 대비해야 하고, 이 역시 분명히 쉽지 않은 길임은 분명하다. 어쩌면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내가 백수를 각오하면서, 그리고 사이코 취급을 받게 될 걸 알면서도 번복에 번복을 거쳐 결국에는 퇴직을 확정한 이유는 위에서 말한 쉬리 속 대사와 연관이 있다.
이 학교는 애초에 오래 유지될 수 없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설립자의 사망과 동시에 문을 닫아야 하는 시한부 운명(저 학교 그만두겠습니다.(3)에서 언급함)인 이곳에서 관리자들은 어떻게든 남은 시간 동안 별 일 없이 학교를 유지해야 함과 동시에 웬만큼 부당한 업무도 그냥 감당할 수 있는 성격 좋고 경험치는 많지 않은 교사가 필요했으나 보안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새어나갈 수 있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관리자들은 내년에는 처우가 좋아질 것이다. 지방재정교부금법이 개선되어 혜택이 생길 것이다. 라고 말했지만 결국 그들은 정년을 앞두었거나, 학교가 문을 닫아도 챙길 것이 많은 설립자의 직계비속자들이었기에 아쉬울 것이 없었다. 즉,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잘 짜여진 연기](박무영의 대사에 의하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잡아두려던 것은 짧게는 이번 학년도까지만 잠자코 있거나 아니면 폐교될 때까지 노예짓을 해달라는 것으로 들렸고, 결국 늦은 감이 있지만 종합적으로 나는 지금이라도 나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자기 조직의 종말을 원하는 관리자 밑에서 부당함을 견디며 출근하기란 내 신념이 버틸 수 없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안끝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