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학교 그만두겠습니다.(5)

백수 예비체험 해보기

by LEMO

퇴사 선언 - 번복 - 다시 퇴사 선언(독자 여러분들은 따라 하지 마세요!)으로 이어진 타임라인의 후반에 이르렀다.(글 내용 시점은 7월 후반 ~ 8월 초반) 교무실 내에서는 그냥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지냈고,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다른 샘들과 인사하는 횟수도 줄었던 것 같다.


사실 꼭 기분 탓은 아닌 게 누군가 나의 뒷담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고, 나의 매가리 없는 번복 번복에 친했던 한 선생님은 '연락하지 맙시다'라고도 했다.(이후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음) 이제 확실하게 이곳에서 벗어날 약 한 달간의 시간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떤 식으로든 결정이 나니 마음은 홀가분해진 것이었고, 다만 매 상황에서 너무 요란을 떨었던 탓에 내 체면을 스스로 갉아먹었다는 자기반성은 필요했다.


7월 후반에 약 1주 정도의 여름 방학(방학이 1주일인 교사가 있습니다. 참고)이 있었는데, 내가 이 학교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방학인 셈이다. 원래라면 짧은 방학 동안 어디든 여행을 가려 안달이었겠지만 마지막 방학은 그저 집에만 있으면서 동네 산책이나 했다.


낮에는 NCS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밤에는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자소서를 쓰면서 얼마 있지도 않은 자격증 번호를 타이핑했다. 진작에 했어야 하는 행동을 나이 36살 먹고 하고 있으니 참 처절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자소서를 쓰고 새벽에 잠이 들면 나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억지 성취감이라도 생겼다.(물론 몇 건의 면접 전형까지 가기도 했으니 꼭 억지라 하긴 그렇고...)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中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고 싶을 때는 못 간다'는 영화 대사도 생각났다. 그래도 시대가 좋아서 블라인드 전형이란 게 있으니 나이를 적지 않아도 내 능력에 맞는 곳을 찾게 된다면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퍽이나 다행이다... 에휴~)


짧은 1주일 간의 방학은 일종의 백수 예비체험 기간이었다. 산책을 하며 평일 낮의 동네 풍경을 보는 것은 낯설었는데, 이전엔 방학마다 아예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 산책도 일부러 더 들어가야 하는 골목길들로 걸었다.


이사 온 지 6년이 넘었지만 처음 가본 길이었다.

방학 직전에 우리 반 실장님에게 회식 제안을 받았는데, 방학이라고 우리 반 학생 몇 명이서 모이는 자리에 담임인 나도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원래 그런 자리를 극구 사양하는 나였지만 곧 작별하게 될 예정이라 가겠다고 말했고, 특별히 내가 믿는 분인 실장님은 약속시간보다 좀 일찍 만나서 나의 그동안 일들을 어느 정도 고해했다. 누가 학생이고 누가 선생인지 참... 실장님이 얘기를 들어만 주셨는데도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는 아무 일 없는 마냥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마쳤다.


짧은 방학이 끝나도 퇴직 예정일까지 조용히 있을 수는 없었다. 후임 선생님의 일거리를 덜어드리고자 시험문제를 최대한 만들고(시험 한 번 치는데 시험지는 8장 만들라고? 참고) 수행평가도 내가 있는 동안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장담하건대 새로 오실 한문 선생님은 절대로 내 일을 수월하게 이어서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맡은 업무 자체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적으로는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시험문제 제작, 수행평가 준비 등의 정신없음이 교차했다. 차라리 이렇게 정신이 없으니까 교무실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도 딱히 아무렇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잠시 시간을 내어 같이 커피를 마셔줬던 동료들이 너무 고마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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