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山情) 얼추 무한(無限)-2

추산(秋山)의 묘미를 느끼다.

by LEMO

※본 기행문의 제목 및 내용은 정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恨)을 아주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암막에 가려졌던 숙소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퇴실이 늦어져 다른 방은 직원이 정리 중이었다.

마치 타운하우스와 같은 느낌의 이국적인 숙소 풍경을 뒤로하고 내장산 입구를 향해 차를 출발시켰다. 다소 쌀쌀한 기온이었으나 단풍을 보기에는 며칠 이른 시점이라 울긋불긋한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었고, 그럼에도 차창 밖에서 느껴지는 산의 기운은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주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산에 들어가기 전 속을 든든하게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이곳의 장점은 대부분 식당이 한정식이라서 메뉴 고민이 크게 필요가 없다. 단점은 한정식이 내키지 않으면 정읍 시내에서 뭔가 먹고 가야 한다.


나는 한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특정 매니악한 반찬이 아니면 어느 정도 먹을 수는 있었기에 아무 식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장님도 친절하셨고 반찬도 무난했다.(다만 전반적으로 간이 약한 느낌은 있었다.)



색감 보정한 사진입니다.

약 5분 여를 달려 내장산 주차장에 도착.

어느 명소의 정원을 떠다 놓은 듯 멋진 계곡이 흐르고, 그 위를 건너면 케이블 카를 타는 승강장이 나타난다. 內藏山! 이름처럼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비경(秘景)을 품고 있을지! 그 기대는 이 계곡을 건너며 마치 이 세계로 향하는 듯한 착각을 안겨준다.


한로상강지간이라 공기는 차고, 계간(溪間)의 물소리는 청아하면서도 시린 느낌이다. 얼핏 주위를 둘러보면 산과 산들이 병풍처럼 사방에 우물쭈물 둘러서있다. 금세 어루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깊은 호흡을 들이키니, 오장(五臟)이 청수(淸水)에 씻기는 듯 맑아진다.


승강장에 올라서니 전방의 웅장한 자태, 그리고 가녀린 줄에 매달린 케이블 카가 보인다. 편도로 약 5분이라 하니 얼마나 많은 분들의 노고가 내 시간을 아껴주었는가!


최대한 필터를 섞어서 색감을 구분해 보았다.

봉우리를 대면하러 가는 길은 수해(樹海)의 향연이 펼쳐진다. 불타는 단풍의 모습은 느낄 수 없어 아쉬운 대로 사진에 필터를 덕지덕지 만져본다. 그러나 자연은 순리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역할을 다 할 것이다.


상부 승장장에 하차하여 약간의 굴곡을 따라 약 300m를 걸으면 전망대에 도달한다.

연자대라는 이름과 달리 제비는 꽁무니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적벽(赤壁)의 망루를 오르는 기분이 이러한가?라는 소소한 궁금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A : 필터를 넣어서 색감을 보정한 파노라마 사진
B : 필터 안 넣으면 대략 이런 모습

A사진의 능선 가운데에서 살짝 우측(B사진에서는 살짝 좌측)에 바위가 드러난 부분이 서래봉이라는 곳인데 미약하게 설악산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시문선원하처시(試問仙源何處是) 신선이 있는 곳 어디냐 물었더니

낙화유수사인미(落花流水使人迷) 떨어진 꽃 흐르는 물이 사람을 헤매게 하네

라는 이인로의 구절은 지리산이 아니었다면 과연 내장산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마주한 선경(仙景)은 어쩌면 둘러싸인 세속에 감추어져 있어 내장(內藏)산이라 가히 불릴만하다고 느껴졌다.


비록 단장(短杖)을 짚고 험난한 전정(前程)을 탐승(探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오색의 풍엽을 만끽한 것도 아니었지만 도도한 내장산의 자태를 난생처음으로 보며, 멀리서나마 백련암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으니 이 또한 범속(凡俗)을 떠났다고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산 입구의 우화정을 마주하였다. 맑은 물에 둘러싸인 독보적인 정자는 징검다리가 그 운치를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마치 이름처럼 깃털이 돋아 날아가더라도 신기하지 않을 오묘한 자태가 꼿꼿이 버티고 있으니 이곳은 눈 내린 풍경도, 낙엽 지는 풍경도 가히 멋지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두고 떠나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세 친구의 정읍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시내에서 카페를 찾아 삶의 애환을 나누며 파이팅을 외치고 이렇게 나의 첫 정읍 방문기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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