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탈출의 목전에서 떨어진 건에 대하여

탓할 곳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

by LEMO

11월에 나는 백수였던 친구(오늘 날짜로 친구는 백수 탈출함)와 함께 소방안전관리자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1급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시험을 통과하여 인생 최초의 시설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내가 왜 소방자격을 땄냐고? 우선 해당 자격시험 응시를 위해서는 2주동안 평일마다 8시간의 교육을 먼저 들어야 하는데 백수가 아니라면 이러한 조건을 맞추기가 힘들다. 어차피 어지간하면 교단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시설과 관련된 자격증 하나라도 있는게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핑계는 좋지않은 버릇이고 성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게 마땅하지만 나도 나름 억울한 부분은 있다. 내가 대학생 때 주전공인 한문교육 외에 복수전공으로 유아교육을 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는데 당시에 엄마가 "나중에 유치원 하나 차려줄게"라고 했던 말을 그냥 믿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어디 아파트가 분양한다고 하면 집 한채 해줄테니 분양넣어보라는 말을 내가 이미 휴학생일 때 하셨다. 소유한 단독주택의 부지를 개발해서 건물을 세우면 아들이 관리해라는 말도 했었다.(부지 사방에 땅주인이 많아서 수십년째 의견수렴 안되는 중)


아무튼 이런 식으로 큼직한 요소들을 날먹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자식 버릇을 살짝 망쳐놓으셨는데 물론 엄마라고 명백한 허언을 하셨을 리는 없겠지만 그것이 나를 세상물정과 어느정도 이격시켜놓았다는 것에는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최근 근무했던 학교를 나오고 백수가 되었을 때 엄마는 "이제 너 뭐할건데?"라고 하셨다. 이 시점에서 내가 학생시절, 20대 초에 들었던 엄마의 대사들을 그대로 돌려줘도 아무 약발이 없을 것은 자명...


심지어 아버지는 매출감소를 이유로 하고계시는 식당을 올해까지만 운영하고 폐업하려 하신다. 부모님이야 어차피 나이가 있으셔서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은 엄청난 죄인이 되는 것.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이제 시설 관련 자격증이 하나 있는 사람이 되었고, 학교 경력도 있으니 이를 교집합해서 도전할 만한 곳이 어딘가 봤는데 딱 하나 있었다. 바로 행정실의 시설관리직이었다.


학교 운영에 대해서 어느정도 감이 있고 소방관리자를 따며 시설에 대한 공부도 나름 했으니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살고있는 대구 지역 학교에 지원서 하나, 포항 지역 학교에 지원서 하나를 넣었다. 결과는 대구 서류탈락, 포항 서류합격이었다. 추측은 간단했다. 시설관리 인원은 이미 학교 밖에서 경력을 쌓고있는 분들이 많고 나이가 좀 되는 분들은 포항으로 이동하기보다 대구에 있길 원할 것이다. 이것이 마냥 추측은 아닌 것은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대기자들끼리 정보를 취합한 결과 시설관리에 지원한 사람 자체가 한자리였음을 도출했기 때문이다.


채용공고에는 전기, 건축 관련 자격이 있으면 우대한다고 적혀있었다. 면접장에 내가 응시한 직렬은 나 포함 총 세명이었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각각 전기와 건축쪽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일하게 학교 경험이 있는 사람이고 소방 자격이라도 있으니 완전히 희망을 놓을 수는 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지원자 자체가 적어서 서류를 통과할 수 있을 때 최종 관문까지 넘어가야만 했었다.


재단이 꽤 큰지 인적성 시험도 치뤘는데 NCS를 공부하던 감으로 열심히 취사풀이를 했고 적어도 거기서 아쉬울 듯한 느낌은 없었다. 또한 예상질문을 최대한 다양하게 연구했기에 '지금 이상으로 답변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면접까지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틀이 흘러 오늘... 조금 전


불합격 메일을 받게 되었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뭐냐면 나는 정말 이 공고의 채용 과정 기간에서 할 수 있는건 다 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나의 자격이 아쉬웠다면 서류부터 떨어트려도 됐을텐데 더 높은 곳에서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놓고 떨어트려서 그렇다.


비슷한 경험이 생각났다.


매일 퇴근무렵 나에게 전화를 하고 내가 아팠을 때 우리집까지 찾아와줘서 나를 걱정해줬던 사람. 내 고백을 깠던 그 사람이다.(https://brunch.co.kr/@pointlemo/28) ​물론 지금은 당했던 기억이 더 뚜렷해서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신경써준 부분도 명백히 있었다.(그게 검은 속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나는 더 가까운 관계를 기대하면서 도전했다가 떨어진 것이다.


애초부터 나에게 지인 이상의 관계로 착각할만한 언행이 없었다면 나도 그사람과의 관계를 적당히 유지했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서류를 통과시켜줬다는 착각을 일으켜 준 셈이다.


결국 현관문에서 넘어졌으면 무릎만 까지고 말았을텐데 베란다에서 떨어졌으니 그 상처가 더 깊었던 것.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나를 깠던 그 사람도 포항 사람이었는데 나는 이제 다시는 포항에 갈 일이 있겠나 했었으나, 면접을 본 이후로 너무나도 포항으로 가고 싶었다. 이젠 좌절되었지만...


물론 이 모든것은 경험이고 다음 도전의 양분이 되겠지만 힘들고 지치는 건 사실이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부록


Q. 백수 주제에 무슨 깡으로 여자한테 고백했나요? 그러니까 까인거 아닙니까?

A. 그 사람은 정규직을 두 번이나 뛰쳐나온 도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학교를 관둔다 했을 때에도 오히려 응원해준 사람이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네요. 이성적인 감정이 없어도 응원은 할 수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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