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하는 대부분이 사실 예고를 하지 않죠
대한민국은 준비의 나라다. 좋은 학교에 가려는 준비를 해야 하고 좋은 직장에 가려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 다음엔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하며 자녀가 생기면 이 과정의 재현을 봐야 한다.
‘죽을때까지 준비만 하면 진정한 여유는 언제 나타나지?’
준비=노력이라고 치면 노력하는게 나쁜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을 많이하는 이 나라는 그러면 왜 OECD 국민행복지수에서 33위(38개국 중)를 하고 있으며 화가 나있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많고 뉴스에는 왜 암담한 소식들이 대부분인가?
데이터가 너무 많고 잘 공유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살기 힘들다는 데이터, SNS에는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 등이 준비를 쉬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 말이다. 물론 거의 맞는 말이라고는 나도 생각하는데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뭐 데이터가 없나? SNS 안하나?
다른 나라는 뭐 이런 준비 안하냐, 대충 사냐고 할 것이다. 당연히 그건 아니겠지만 사회적인 피로도(자기객관화 인지 부족 및 과도한 목표치 설정 등) 측면에선 솔직히 한국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상위권에 포함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이 가지는 특수한 뭔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보는데...
대한민국은 전쟁 이후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빠른 경제성장으로 빛을 발산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강렬한 빛의 너머엔 암흑이 있기 마련이다. 빛의 배경엔 남을 밟고 일어서는 삶이 당연하다는 가치관, 타인의 실패는 동정이 아니라 나의 안식이 되는 모습 등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죽기 전까지 자기 인생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그리고 지금처럼 가치관이 쉽게 공유되는 시기에는 이러한 배경적 요인을 따져보는 것도 점차 의미가 없어질 듯)
그런데 방법은 있다. 잣대를 낮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방법이다.
'내가 들이부은 학비가 얼만데 이런데서 일하라고?'
'내가 패스한 사람이 몇명인데 이런 사람이랑 결혼하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보상심리는 커져만 가는데 오히려 잣대를 낮추라는 것은 [안하고 만다]라는 결론을 유도하기도 한다.(대부분 본인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각하지 못함)
옛날 아메리카의 어느 원주민 부족은 성인식으로 옥수수 따기를 시켰다고 한다. 방법은 간단한데 그냥 옥수수 밭을 지나면서 가장 큰 옥수수를 하나 따서 밭을 통과하면 되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 없고 옥수수는 딱 한 번만 딸 수 있다.
이것이 왜 성인식일까? 아무래도 아이들에게는 많이 주어졌던 기회라는 것이 성인이 되면 많지 않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은 아닐까?
지금 옥수수를 땄다가 나중에 더 큰 옥수수가 보이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밭의 끄트머리에서 가장 작은 옥수수를 쥐고있게 만들지도 모른다.
완벽한 학교, 직장, 배우자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냐만(누군가는 성취하는 것이기도 할테고) 때로는 신기루를 향하다가 오아시스를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침마다 보시는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인간극장이다. 그 프로그램의 특징은 경제적으로 거창해 보이지는 않지만 인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패배하는게 아니라 그냥 다른 필드로 가는 것. 어떤 선택이 답이라고는 못해도 희망과 행복이 엿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저런 선택도 있다' 정도는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정보통신의 발달은 집단지성을 형성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더욱 늘어나는 경쟁자들을 양산하고 인간성을 마르게 하고 있다. 경쟁이 꼭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원칙대로라면 가장 공정한 방식이니까.
하지만 대부분이 꼭대기를 쳐다보면서 인적자원이 낭비되고 최고의 상대를 찾느라 나라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으니 天下無無一能之人(천하에 재능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이라던 정조 임금이 공멸을 향하는 작금의 세태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