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안힘들겠냐만
我腹旣飽不察奴飢(아복기포불찰노기)라는 말이 있다. "내 배가 부르면 종(노비)의 배고픔은 살피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쁘게 말하면 이기심, 좋게 말하면 입장차이와 관련된 내용이다.
12월~1월 무렵이 되면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교사들이다. 엄밀히 말하면 과거의 나처럼 '기간제교사'들이다.
힘들다고 했지만 먼저 말하자면 기간제교사의 특전도 있긴 하다. 향후 정교사가 되면 기간제교사의 경력 기간이 100% 합산되어 호봉이 획정되므로 지난 시간이 그냥 날아가지는 않는 것.
그런데 정교사의 문은 좁고 기약이 없기에 계속 기간제교사를 하다가 나이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아예 임용을 시도하지 않고 기간제교사 자체에 만족하는 분들도 계시고)
특히 학교는 3월부터 개학이기 때문에 이들의 계약기간은 보통 3월부터 익년 2월까지다.(이 기간을 부르는 정식 명칭이 '학년도'이다.) 문제는 일반 회사가 아니기에 학기 중에 학교가 아닌 곳으로 이직하기가 힘들고 계약이 끝날 무렵 도전할 만한 곳은 또 다른 학교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간제교사를 늪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12월~1월 무렵에 이들이 힘든 이유는 방금 얘기했듯 다음 학년도의 1년 거처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선택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공립과 사립이며, 정교사 선발이 아닌 기간제교사 채용과정에서 이 둘의 표면적인 절차 차이는 없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립을 선호하는데 공립과 달리 계약 연장 가능성이 있고 사립 정교사의 문이 열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사립학교의 기간제교사 선발에 관한 이야기만 다루기로 함
사립학교 기간제교사들의 대부분은 눈물겹다. 우선은 내년에도 재계약이 되기 위해 정교사와 관리자들에게 잘 보여야 하고 업무가 부당한 감이 있어도 그냥 버텨야 한다. 물론 과도한 업무 편중은 교육청의 철퇴가 떨어질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선은 지켜지지만 어디에나 상상 이상은 존재한다.
그리고 연말연초가 되면 이 학교에서 나를 재계약해줄지 신경이 곤두선다. 관리자들이야 신분이 보장되어 있으니 걱정거리가 없다. 마치 배고픈 종과 배부른 주인을 보는 느낌이다.
꼬우면 공부해서 정교사 되면 되잖아? 같은 생각을 하신다면 생각으로만 하시길 바란다. 애초에 정규직이라는게 굉장히 한정된 자리이고 필연적으로 비정규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갈 수 있는데 가지 않은 것과 가고 싶은데 벽이 높은 것은 엄청난 차이이며 대부분의 기간제교사들은 상상 이상의 노력과 공부를 겸하신다.
그리고 기간제교사로 선발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다. 메이저 과목 전공자의 경우 수십 군데를 지원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소수 과목의 경우 '이걸 전공한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라고 놀라게 된다. 서류부터 떨어질 각오를 일단 하고 원서를 난사해야 한다. 경력이 적을수록 집을 떠나서라도 경력을 쌓으려고 원정을 가게되는 경우도 많다.
시행령을 참고하면 기간제교사의 임용은 1년이 원칙인데 최대 3년을 추가로 연장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한 학교에서 최대 4년 연속 근무가 가능하다. 그러나 보통은 1년마다 채용공고를 올린다. 공정한 채용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교육청에 어필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여기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학교는 웬만하면 기존에 근무했던 사람을 다시 뽑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미 학교 상황도 잘 알고 학생들이 진급해도 구면이라 어색함이 없기에 계속 고용해도 편하다. 문제는 그럼에도 학교는 채용공고를 내고 지원자를 받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기존 기간제교사를 다시 선발할 것이면서.
차라리 채용공고를 내지않고 그냥 재계약을 하면 되는데도(이렇게 그냥 자동 재계약을 하는 학교도 존재함) 기어이 채용공고를 올리고 있다는 것.
원서를 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지원하면 무조건 떨어지는 곳에 원서를 내는 것이다. 서류에서 3배수 혹은 5배수를 선발하기 때문에 1명을 선발하는 경우 2~4명의 사람들은 면접장에서 들러리가 되는 것이고, 대한민국에서 이맘때쯤 매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학교 입장에선 "적임자가 없어서 기존 기간제교사를 다시 선발했다"라고 한다면 틀린 말도 아니다. 경험 있는 구면은 적임자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채용 공고를 보고 원서를 내는 들러리들은 무슨 죄길래?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학교에서 기존 인원에게 올해도 원서 내달라고 해서 당연히 이 학교에서 나를 또 써주겠지? 하고 원서를 냈다가 떨어지는 경우이다. 이래저래 종의 배고픔은 주인보다 힘겹다.
나는 처음 기간제교사 원서를 내러 대구에서 경북 영양까지 간 적도 있었다.(서류 탈락했음) 학교는 지원서를 방문으로 받는 경우가 많고 우편이나 메일로 받는다 해도 얼굴도장을 찍고 싶어서 직접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에겐 아둥바둥으로 보일 처절함이다...
차라리 어디 구멍가게였으면 팔이 안으로 굽는 채용방식이 용인될지도 모르지만 학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모두가 암암리에 묵인하는 시스템이라도 학교만큼은 공정성이 기반되어야 한다.
내 자식이나 제자가 이 부당한 과정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피해의 이유가 그들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계약직원을 뽑는 과정도 말이 많은데 정규직 선발과정은 오죽하겠는가.(불공정 임용으로 징벌 조치가 내려지는 학교도 있다.)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단어 하나, 공식 하나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전인적인 요소들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한 교육현장에서 최전선에 있는 교육자를 선발하는 과정부터 불공정이 생긴다면 어떤 도덕을 가르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