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가해자도 되살릴 수 없지
흉악범이 잡혔다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고 치자. 이 범죄자는 연쇄살인을 했거나 성폭행을 했거나 방화를 했다. 혹은 그 외의 중범죄를 저질렀거나 둘 이상의 범죄를 같이 진행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범죄자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반응은 어떠할까?
"저런 놈은 내 세금으로 밥먹이는 것도 아깝다. 사형시켜야 돼"
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사람들은 생명이란 소중하고 최우선적인 보편적 가치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흉악범에 대해서는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쉽게들 꺼낸다.
그 범죄자도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았고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줬으니까 당연히 죽여야지!라는 생각이 작동했지 않을까?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 이유가 '범죄자의 생명도 소중하니까' 따위의 감성적인 이유와는 전혀 상관없다.
"사람을 죽였는데 징역이 저것밖에 안돼?"
"사고를 그만큼 치고도 집행유예라고?"
등의 의견은 굵직한 사건의 재판이 끝난 후 뉴스를 보면서 한 번쯤은 해봤을 의견들이다. 이렇게 국민들이 기대하는 법 감정에 비해 현실은 뭔가 많이 빈약해 보이고 있다. 무기징역이라 해놓고는 가석방이 되는 것도 그렇고...
특히나 사형에 대한 의견은 더욱 격한데, 생사여탈을 법으로 심판하는 포스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흉악범의 합법적 영구격리 수단으로 사형을 많이들 기대하고 있다. 그런 분들에게는 아쉽게도 현재 대한민국은 사형의 선고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상소하여 무기징역이 된 경우를 제외하고 최종 사형 선고 확정이 된 마지막 해가 2016년) 그마저도 1998년부터는 사형집행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23년 11월 대구교도소는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였다. 새로운 건물과 과거 건물의 차이점 중에는 사형장의 유무가 있는데, 기존에는 있었고 신축에는 없다. 그리고 이 차이점은 30년 가까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 사형에 대한 실질적인 의지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앞서 말한 내가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죽은 사람에게서는 어떤 정보도 더 이상 얻을 수 없다.
어떤 연쇄살인범 A를 사형시켰다고 하자. 훗날 이 살인범과 같은 수법의 사건 정황이 드러났을 때 이것 역시 A의 소행인지 확인하고 싶어도 물어볼 A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A가 이 사건의 범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수사의 방향을 가닥 잡을만한 보조적인 데이터를 A를 통해 참고할 수도 없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 박사를 생각하면 될 듯)
2. 사형 선고자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사형을 하라고 선고하는 자는 판사지만 집행은 교도관(교정공무원)이 한다. 명령에 의해 사람의 생명을 내 손으로 박탈하는 것은 대상이 아무리 범죄자라도 마냥 쉽지 않다. 실제로 과거 사형을 집행했을 당시 집행자로 선정된 교도관들은 수당(사형집행수당)을 사형수의 묘소에 올려두고 왔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감성적인 요소로 봐야 할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업무적으로 누군가의 목숨에 종지부를 찍는 행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만약 '나는 저런 범죄자의 목숨을 뺏는 일이라면 어떤 감정도 없이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데?'라는 분이 계시다면 그것은 자신의 개성으로 봐야 하거나 실제상황이라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봐야 한다. 교수형 집행의 경우 5인의 집행자들이 들어가 동시에 버튼을 누르는데 발판이 열리는 버튼은 그중 단 하나이다. 나머지 네 개의 버튼은 가짜인 것. 이런 시스템이 있는 이유부터가 아무리 범죄자의 목숨을 박탈하는 업무라도 심리적, 정신적으로 쉽지 않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3.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되었던 연쇄살인사건의 누명 옥살이를 한 인물을 생각해 보자. 일반적인 국민 법 감정이 먹혔다면 누명을 썼던 윤 씨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무죄가 밝혀지고 진범이 확인되는 순간 정작 내가 살아있지 않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물론 윤 씨의 경우는 고문 수사가 발생하던 시기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이는 결과론적인 생각이다.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되고 진범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그는 누명을 썼다"라고 확신했을 것인가?
위와 같이 내가 생각하는 사형 반대의 3가지 이유는 뭐 당연하겠지만 읽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동의되지 않을 여지도 충분하다.
'요즘 시대에 과거보다 수사 기법도 더 좋아졌는데 누명을 쓸 일이 어디 있다고?'
'여죄를 찾을 필요가 없는 특정대상 살인자에게 무슨 정보를 더 얻겠다고 굳이 살려둬?'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확신할 수 있는가?
전국 교정시설에 수감된 인원들 중에 혹시 단 한 명이라도 누명을 쓴 자는 없는지, 자신이 지은 죄의 일부가 아직도 가려진 채로 죗값을 덜 받는 중인 자는 없는지에 대한 확신 말이다.
아무리 체계적인 시스템도 결국엔 사람이 만든 것이고, 허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나는 결고 명백한 범죄자에 대해서 그들도 인간이니 인권에 대한 측면에서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범죄자가 아닌데 범죄자가 된 사람, 밝혀지지 못한 피해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업무라서 누군가의 목숨을 끊어야 하는 사람을 위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본 내용은 교정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친구와 나눴던 대화를 참고하여 작성했던 2015 개정 교육과정 도덕과 수업 자료 내용을 방 정리 중 발견하여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