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댓가

받았던 반대편 손으로 무엇을 내어주었는가

by LEMO

사례 1. 한 엄마가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가족 톡방에 사갈 것이 있냐고 물었다. 자식 A는 당장 생각나는 것이 없어 괜찮다고 하였으며, 자식 B는 그 마트의 행사제품을 검색하고 당근마켓의 검색기록을 보며 평소 뭘 사고 싶었는지 찾고 저녁에 먹고 싶은 간식거리를 머릿속에서 쥐어짜내 카톡 한 화면을 가득 채웠다.(디테일을 위하여 설정을 넣자면 자식 A, B는 모두 성인이며, 혹시나 해서 성별은 굳이 정하지 않음)


사례 2. 가까운 사이인 두 사람(C, D)이 시간도 때울 겸 마트에 들어갔다. 산책 겸 들어간 마트였는데 C는 신이 나서 카트에 이것저것 물건을 채우고 있고 D는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계산대에서 C는 폰을 보고 있고 D는 익숙한 듯 카드를 꺼낸다.(혹시나 해서 성별은 굳이 정하지 않음)



살다 보면 받았을 때 곤란한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가령 뇌물이라던가 부정하게 취득된 후 유통된 것들 말이다. 그런 반면 부담 없이 받기 쉬운 것들도 있다. 가족이나 애인, 친구가 주는 것들(혹은 그들에게 요구해서 받아내는 것들) 말이다.


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거나 공적으로 만나는 관계에서는 사양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가까운 사이에서는 넙죽넙죽 받거나 뭔가를 쉽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받는다는 개념은 언젠가 돌려줘야 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쉽게 받거나 요구하는 사람들이 받은 만큼 베푸는 것을 잘 못 봤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계산적으로 생각하지? 가깝고 좋은 사이라면 그냥 해주면 되잖아?'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높은 확률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주로 이득을 취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받는 것이 많은 포지션은 계산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당연히 싫어할 테니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 타입이신 분이라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받는 것과 돌려주는 것을 꼭 계산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 계산이란 숫자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원짜리 받았으니 만 원짜리 사줄게) 오고 가는 행동(이번엔 무언가를 받았으니 다음엔 무언가를 베풀게)이라면 예의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의란 상대가 적이든 아군이든 두 번 볼 일이 없든 매일 보는 사이든 최소한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사람의 선한 본성을 네 가지로 [사단이라고 함] 설명하고 있다.


1. 측은지심 : 타인의 불행에 측은해하는 마음 [仁 어질 인]

2. 수오지심 : 잘못된 행동에 부끄러워하는 마음 [義 옳을 의]

3. 사양지심 : 거절하고 양보하는 마음 [禮 예절 예]

4. 시비지심 :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마음 [智 지혜 지]

*보면 아시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1,2,3,4 모두 심하게 결여되어 있는 요소들임


내가 지금 말하는 케이스는 3번에 가까운 것으로, 맹자는 사양하는 마음이 예절이라고 했다. 물론 지금은 경서를 공부하는 시간은 아니니 맹자의 의견은 참고로만 하고 나의 생각을 서술해 보자면 이러하다.


[사례 1]에서 만약 A에게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가정해보자.(물건이 무엇일지 상상은 여러분 마음대로) 이 경우 A의 요구량은 과연 B의 요구량보다 많을 확률이 높을까? 적을 확률이 높을까?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이상 A의 요구량은 B의 요구량보다 적을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굳이 부모에게 노고를 시키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필요한 게 당장 생각났다 해도 작정하고 주문을 넣는 B를 따라잡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탁하는 것이 수월한 사람은 이것에 대해 아무것도 반추하지 못한다. B는 타이핑 몇 번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순식간에 요구하였지만 상대는 그것을 맞추기 위해 움직이고 찾고 돈까지 지불하고 짐을 들어야 한다. A가 B에게 "엄마 적당히 부려먹어"라고 해도 B는 스스로를 돌아보기보단 A를 아니꼽게 여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A, B가 성인이라는 조건을 넣은 이유도 있다. 성인인데도 요구하는 것이 익숙하고 사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실제 사례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례 2]도 비슷하다. 자기 돈으로 계산하지 않는 사람은 카트에 물건을 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C 또한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은 없다"는 원론에 동의하면서도 D가 자신을 위해 카드를 꺼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가까운 사이이고 늘 그래왔으니까. 그리고 늘 그래왔던 것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게 대부분의 사람이니까.




나는 인문학을 공부했던 사람이지만 솔직히 인문학은 절대 주류 학문이 될 수 없고 사회를 주도할 수 없음에 동의한다.(내가 기간제 교사를 접고 기술학원에 다니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런 느낌

그러나 인문학은 사라져서는 안 되는 분야임은 확실하다. 꼰대 체제를 유지하고 수치화할 수 없는 말장난에 집중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전 세대들의 가치관을 통해서 취사해야 할 것이 뭔지를 판단하고 관계의 상식이 더욱 정립되는 것. 그래서 기본적인 인의예지는 존재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 사회 전반에 필요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쉽게 받고 쉽게 요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나를 위한 상대의 노고가 그저 가족이니까, 가까운 사이니까라는 이유로 '당연히'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에 100% 동의할 수는 없다.


계산기를 두들기며 내가 이만큼 받았으니 이만큼 주겠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한 일에 상대가 노고한 만큼 나도 보답하겠다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상대에게 고생시키기 싫다는 마음가짐. 정 아니면 사양을 하면서 부담을 가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통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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