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
섬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섬. 혼자씩일 뿐인 우리들은 때로 섬을 만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향한다. 섬은 섬을 보며 거울을 보듯 자신을 그 안에 투영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하나의 작은 섬이다. 섬은 여러 가지 의미로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작지만 전부인 세계, 자기만의 영역, 경계, 고립, 독립, 자유, 정복.
우리는 유채꽃의 달콤한 향이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4월의 봄날 오륙도를 찾았다. 오륙도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섯 개 혹은 여섯 개로 보이기 때문에 지어진 이 섬의 이름이다. 이곳에 방문하면 섬으로 들어가지 않고 멀리 떨어져 다양한 각도로 섬을 내려다볼 수 있다. 나는 찬란하게 펼쳐지는 봄꽃의 노란빛 색채와 지나가는 이들의 밝은 표정 때문에 오륙도가 섬이라는 사실조차 잠시 잊고 말았다.
유채꽃이 만들어준 옐로우 카펫을 따라 오륙도 스카이워크 방향으로 걸어올라 가면 바다를 향해 있는 육지의 얼굴이 눈, 코, 입의 실루엣처럼 한눈에 그려진다. 푸르름이 맑아 보여도 언제나 위엄을 잃지 않는 부산의 바다 전경은 오륙도에서 더욱 광활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3월에서 4월 초, 해맞이 공원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드넓은 수선화 밭을 배경으로 오륙도와 그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 폭에 담을 수 있다. 오륙도가 내려다보이는 해맞이 공원의 언덕에 왜 수선화 밭이 만들어졌을까? 외로움을 노래하는 시,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떠올려본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섬과 수선화가 서로를 마주 보는 봄의 오륙도는 암호로 둘러싸여 있다. 꽃들의 노란 물결이 섬의 외로운 어원을 지워버릴 것 같다가도, 결국 혼자씩일 뿐인 섬과 섬들의 자리는 사람과 비슷하게 닮아있다.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바다 위에서 나의 섬을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본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는 시인의 말을 되뇌어보면서.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하나의 섬이다.
1. 3-4월, 수선화 밭과 함께 펼쳐지는 섬의 아름다운 경관
2. 해맞이 공원 트래킹 코스
오륙도
051-607-6395
부산 남구 용호동 936-941
포인트 바이브스는 공간을 찾아 나섭니다.
우리에게 좋은 감상과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요.
포인트 바이브스는 매거진의 구성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공간을 탐미하며 깊게 관찰하는 우리의 시선, 기억을 더듬어 써 내려간 짧은 글이 함께 더해져 한 편의 완성작으로 차곡차곡 기록되길 바랍니다.
라이프 스타일, 에세이, 일상 속 작은 Tip 등 생활 전반의 폭넓은 이야기 또한 틈틈이 다루는 포인트 바이브스는 당신과 가장 가까운 내 손 안의 매거진을 만들어갑니다.
사진의 무단 도용은 저작권 침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