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노트

비누 만들기

by 독당근


이번 생일에는 나를 위해 뭔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었다. 무엇을 하면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자주 들어가는 여가생활 어플에서 비누 만들기 수업을 발견했다. 비누가 하나의 작품 같았다. 비누 안에는 산, 구름, 바다, 달, 꽃 등 자연이 담겨 있었다. 알록달록 예쁜 색감이 더해져 보는 순간 반해버렸다.

원데이 클래스라고 해서 하루 만에 모든 기술을 마스터하기는 어렵다. 무언갈 '배운다'라기보다는 '체험한다' 표현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터득한 기술을 하루 안에 얻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체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멋진 일인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 것에 비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건 세상에 너무나도 많으니 슬쩍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공방에는 여러 천연향료의 향들이 가득 차 있어 릴랙스 되는 느낌을 받았다. 곳곳에 아기자기한 비누와 캔들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잔잔한 배경음악도 기분 좋게 들려온다. 이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 보낼 시간이 기대된다.

오랜만에 앞치마와 팔 토시를 하니 뭔가 대단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된 듯한 기분에 설렜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선생님은 모든 단계마다 꼼꼼히 재료를 준비해 주셨다. 친절히 알려주시는 대로 햇병아리처럼 잘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신중히 향을 고르고, 내가 선택한 디자인에 맞는 색을 조합하고, 틀에 하나씩 쌓아 올리는 정성스러운 과정은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머리를 계속 쓰면서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임에도 스트레스가 항상 따른다. 하지만 비누 만들기는 오로지 재미를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가끔 무거운 것들에 짓눌리며 살아간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책임감으로 이것들을 짊어지고 있지만, 버거워질 때면 다 던져버리고 도망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무거운 것에 끌리게 되며 한쪽으로 쏠려버린다.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에겐 가벼운 것이 필요하다.


비누를 건조하는 데 시간이 걸려 3주가 지나야 받아볼 수 있다. 공방 화장실에 내가 디자인한 비누와 비슷한 비누가 있었다. 내가 만든 비누가 우리 집 욕실에 있는 상상을 해본다.


이 비누로 매일 손을 씻는다면 한결 가벼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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