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
집과 멀지 않은 거리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물건이 채워지며 하나씩 갖춰지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내 취향일 것 같아 언제 열리나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오픈을 해 들어가 보니 완성된 내부는 기대 이상이다. 요즘 흔히 보이는 카페처럼 지나치게 힙하지 않으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하얀 내부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친절하게도 작업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아마 단골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카페의 진입장벽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바로 선곡이다. 리쌍, 다이나믹 듀오, 자두, 브라운 아이드 걸스, 샵, 에픽하이, 프리스타일 등 과거에 핫 했던 가수들의 노래(그것도 댄스곡 위주로)가 큰 스피커를 통해 연달아 들려온다. 물론 대부분 나도 좋아하고 즐겨 듣던 노래들이다. 하지만 아침에 조용히 글을 쓰면서 들을 노래는 절대 아니다. 평화로운 아침 시간을 보내려 했던 계획이 틀어졌으나 전혀 수확이 없는 건 아니다. 이로써 나의 취향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
글을 쓸 때 나의 음악 취향은 재즈이다.
(가끔은 작은아씨들 조 asmr)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알고 싶다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 새로운 장소에 가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는 거다. 똑같은 패턴의 일상을 살게 된다면 자신의 취향을 그저 습관으로 치부하기 쉽다. 습관과 취향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습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취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취향에는 마음이 담겨 있다. 따라서 ‘그냥’, ‘해왔던 거니까’라는 말로 취향을 뭉개서는 안 된다. 취향은 그것보다 중요한 대접을 받을 필요가 있으니까. 취향은 자신의 마음 일부를 외부에 투사한 것이다. 취향을 알수록 영혼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취향이 하나둘씩 모일수록 마음의 방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건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걸 의미한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걸어갈 방향을 명확히 아는 이의 발걸음은 당당하다.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요’라고 두리뭉실하게 말하는 것보다 ‘저는 이걸 너무 좋아하지만 저건 참을 수 없이 싫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강하게 뇌리에 남는다.
예를 들면 ‘저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걸 좋아하지만 가끔 사람들이랑 만나서 가볍게 술 한잔 하는 것도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저는 인사치레를 너무 싫어해서 지나가는 말로 밥 한 끼 하자고만 해도 무조건 붙들어서 먼저 연락을 잡는답니다. 그래서 매주 약속이 많은 편이에요’라고 하는 쪽이 솔깃해진다.
그 확고한 취향은 지루한 자리에 생기를 더해준다. 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은 융통성 없고 유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취향이 다르더라도 호기심 때문에라도 애프터를 하게 된다. 나는 취향을 말하는 게 내 영혼의 일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습지만 나를 충분히 어필해야 하는 소개팅 자리에서 조차 사소한 취향마저도 말하기 어려웠다. 뭔가 들키면 안 될걸 들키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표현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우리는 장소나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취향으로 곁에 두어야 하니까. 자신의 취향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이를 온전히 즐기며 향유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마음의 방향을 누군가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들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유들유들하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질 줄 알았다. 하지면 현실은 이건 너무 좋아서 꼭 해야만 하고 저건 너무 싫어서 절대 하고 싶지 않아 진다. 가끔 그런 나의 고집스러운 태도에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무작정 좋아하고 싫어하는 태도를 경계해야만 한다.
취향은 섬세한 발굴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꽉 막힌 어른이 되기 전에 나의 취향을 찾는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겠다. 그리고 나만의 내밀한 취향을 소리 내어 말해보겠다.
영혼에 닿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