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이해되는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by 독당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습니다.

꽤 두꺼워서 다 읽는 데 일주일이나 걸렸습니다.

시간이 넉넉한 연휴에 읽는 걸 추천합니다.


이 책은 제가 스무다섯 살 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처음 읽었습니다.

왜 제목이 다른지 의아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1989년도에 문학 사상사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고, 2013년에 민음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판권을 계약하여 <노르웨이의 숲>으로 재출간하였습니다.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이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더 끌립니다. 물론 표지도 말이죠.

쓸쓸하고 외로운 인간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책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큰 울림을 주지 못했죠.

다만 누군가가 저에게 "그 책 읽어보니 어때?"라고 질문을 했던 게 기억납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죠.


"여기 나온 사람들 다 이해할 수 없어"


그때는 제가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죠.

태풍의 눈 속에 들어가면 고요하다고 하죠?

저는 제 또래의 젊은 주인공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받으면서도 계속 끌어안고 있습니다.


크게 한 걸음 떨어진 30대가 되어 다시 이 책을 읽으니 이 젊은이들이 이해가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낀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저 역시 그들처럼 불완전한 영혼을 품으며 떠돌아다녔습니다.

흠.. 아직까지도 떠도는 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저 말고도 모두 그러지 않을까요?

모두들 그 시기를 무사히 지났다고 안심하며 살고 있지만

글쎄요.. 조금만 건드려도 펑하고 터질지 모릅니다.


아슬아슬하고 알 수 없는 세상 속을 살고 있지만

문득 이제라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으로 느껴집니다.

그건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오랜 시간 뒤에는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란 의미니까요.






"사람이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건,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실의 시대> 서문에 있는 글입니다.

여러분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싸움에서 살아남으셨나요?


무심코 그려보고 싶어 따라 그린 그림인데 왠지 아름다운 청춘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