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카 성당
무신론자인 나는 여행 중에 많은 교회와 성당을 만났음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커다란 관공서나 우체국을 볼 때와 다름없는 눈으로 교회나 성당을 바라봤고(어쩐지 불경해 보이지만), 시간이 널널해도 머리만 빼꼼 넣어 스윽 둘러보고 나오기 일수였다.
하지만 바실리카 성당에서는 홀린 듯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물론 그전에 봤던 곳들에 비해 바실리카 성당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걸 떠나서라도 그 안에는 어떤 신성한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이상하게도 여행노트에는 바실리카 성당 안에서 보낸 시간이 언급되어있지 않다. 반면 키토에서의 일상 이야기는 시시콜콜 자잘한 이야기까지 기록되어 있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렸다는 tmi부터, 배불리 먹은 새우볶음밥, 저렴한 대형 마트를 찾아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 적도 박물관에서 계란을 세운 이야기, 여권을 안 가져와서 적도 스탬프를 찍지 못해 아쉽다는 등과 같은 이야기 말이다. 반면 바실리카 성당에 대해서는 아주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호스텔에서 길을 건너 조금만 올라가니 어마어마하게 큰 바실리카 성당이 보였다.
멀리서 볼 때보다 더 웅장하고 멋졌다.
근데 아직도 지어지는 중이라고... 언제 완공될까?
내가 남긴 이 부실한 정보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에콰도르라고 한다면 바실리카 성당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먼저, 중요하게 떠올려지기 때문이다. 어떤 장소나 대상 혹은 행위는 시간이 한참 흐르고서야 그 의미가 중대하게 떠오르는지도 모른다.
에콰도르는 다음 여행지인 페루를 가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나라 정도로만 여겼기에 수도인 키토에서만 머물렀다. 사실 다양한 종의 거북이와 도마뱀을 볼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칭해지는 갈라파고스 제도에 가고 싶었으나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갈 수는 있었지만 아직 남은 일정이 많아 아껴두기로 했다. 바다 거북이와의 스쿠버 다이빙은 다음을 기약하자.
에콰도르는 남미에서도 물가가 저렴한 축에 속해 열흘이나 있었다. 선영언니의 추천으로 갔던 처음 갔던 벨몬트 호스텔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쭉 지냈다. 방 안에 개인 화장실이 포함되어 있고, 침대와 작은 에어컨이 있으니 더 이상 필요한 게 없었다. 방 전체가 눅눅하긴 했지만 남미의 호스텔 중 뽀송뽀송하다거나 건조한 곳은 선택지에 거의 없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3층이나 되는 큰 건물이 상당히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난 시끄러운 파티 호스텔은 딱 질색이다.
아침 일찍 미구엘 역에서 내려 경찰 아저씨의 도움으로 호스텔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사모님께서 활짝 웃으며 문을 열어주시고 그 뒤에는 인상이 좋은 사장님과 귀여운 꼬마 남자아이가 서있었다. 사모님은 나를 3층 맨 끝 방으로 안내해 주셨다. 짐을 풀고 시계를 보니 12시밖에 되지 않아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조용한 동네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키토는 구시가지가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거리를 걸어가면 과거 여행을 하는 듯 그림 같은 옛 건물들이 쫙 펼쳐져 있었다. 큰 광장으로 나가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지만 어쩐지 복잡하다거나 정신없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느긋하게 움직였다.
키토는 보고타와 마찬가지로 수도인데 모든 것들이 훨씬 여유롭게 흘러가 신기했다. 심지어 구름조차도 0.5배속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듯하다. 분수를 뛰어다니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이런 곳이 사람 사는 동네구나 싶었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이곳은 보고타와는 또 다른 의미로 느슨하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호스텔로 돌아와 방에 들어가기 전 부엌이나 구경해볼까 싶어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방 반대쪽 계단을 타고 4층 옥상에 부엌이 있다. 살이 쪘으니 운동삼아 많이 움직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지만 부엌을 가기 위해 다시 빙 둘러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게 꽤나 번거롭다.
부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딱 봐도 한국인인 아저씨가 계셨다.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한국어로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어보셨다. 아저씨 역시 내가 전형적인 한국인으로 보였나 보다. 아저씨는 이십여 년 전에 이곳으로 이민을 오셨고 현지인과 결혼하셨다고 한다. 호스텔 주인이 친구라 집수리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실 거라고 하셨다.
아저씨는 나에게 꽤 유용한 정보를 많이 알려주셨다. 밤에는 보일러가 잘 작동하지 않으니 낮에 샤워를 해야 한다, 천사상이 있는 곳은 위험하니 가지 않는 게 좋고 차라리 멀리서 보는 게 보기에도 낫더라, 옥상에서 투우 경기장이 잘 보이니 한 번쯤 구경해봐도 좋다, 진짜 적도선은 적도 박물관이 아닌 바로 옆 인디오 박물관에 있다 등. 내가 먹는 것이 부실해 보인다며 우유, 식빵, 계란, 딸기잼, 김과 같은 것들을 아낌없이 주셨다.
다음날 아저씨의 말이 문득 생각이나 투우 경기 시간에 맞춰 옥상에 올라갔다. 오후의 따뜻한 햇빛 아래 바람도 선선하고 아저씨 말씀대로 투우 경기장이 아주 잘 보여 날을 잘 잡았다 싶었다. 작은 투우 경기장이었지만 꽤 많은 관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경기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가만히 경기를 지켜보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라? 이게 맞나?' 하며 갸우뚱해지기도 했다. 내가 상상했던 투우와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는 터라 긴장감이 안 느껴져 그런가 싶었지만 분명 그것 때문 만은 아니었다. 성난 황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볼품없는 작은 소가 투우사의 붉은 깃발 앞에 서 있었다. 딱 붙는 그레이 슈트를 입은 체격이 좋은 투우사가 소에게 손짓하며 유인하자 머뭇거리던 소는 어떤 결심을 한 듯 깃발로 돌진했다. 그런 소를 비웃듯 휙 하고 깃발을 넘기곤 투우사는 각 잡힌 포즈를 취해 보였다. 그 모습이 멋져 보이기보다는 왠지 비겁하게 느껴졌다. 소는 공격력 전혀 없었지만 다만 이 고단한 쇼를 끝나기 위해 훈련된 대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차마 더 보지 못하고 방으로 내려가야 했다.
어느 날 휑한 호스텔 복도에 북적이는 소리가 드렸다. 문을 열고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스무 명 정도의 아프리카계 흑인 사람들로 매워졌다. 너무나도 낯선 광경에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발견한 아저씨가 어느새 내 옆으로 와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이라며 살짝 귀띔해주었다.
"나라가 안 좋아지니 여기저기 떠도는 거야. 아마 나중에 브라질에서 일자리를 구할 것 같아."
사람들은 마치 서로 처음 본 사이처럼 대화를 나누지 않고 무표정이었다. 약한 전등 불빛으로 어두운 복도가 더욱 우중충해 보였다. 그 긴장된 분위기로 인해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버려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얼마 안 있어 방을 나와 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방 안으로 들어갔는지 아주 고요했다. 어떤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방 안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든 원치 않든 떠돌아야 할 때가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