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도, 과거에도 현재도
몇 년 전 셀프 인테리어 붐의 초기에 시공별로 각각 인부들을 구해서 셀프 인테리어를 '뚝딱' 한 적이 있다. 당시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도 레퍼런스를 거의 찾기 힘들었던, 창틀과 문틀을 다 시꺼멓게 칠하는 제대로 블랙 앤 화이트 컨셉 설정부터 각 시공별 인부들을 구하고, 타일부터 줄눈의 색깔을 일일이 정하고, 바닥 뜯기부터 각 시공 관리 감독, 창을 낸 가벽을 센티 단위로 길이 설정하여 세우고, 죽은 공간 활용 아이디어까지 직접 다 기획하여 '내 마음'에 드는 집을 완성했었다. 당시 그 결과 총 시공 비용을 65%가량 아꼈고, 그것보다 더 큰 재산은 인테리어에 대한 전혀 새로운 지식들을 습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책을 출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하나하나 기능을 검색해가며 일일이 편집을 하고 디자인을 손을 보고 있자니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셀프 인테리어든 셀프 퍼블리싱이든 예전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전문가의 영역들이 이제는 일반인에게 문이 확확 열리고 있다. AI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이미 직업의 경계나 성역 같은 것들은 무너지고 있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충분히 떵떵거렸을지도 모르는 인테리어 시공사나 출판사들을 포함한 여러 업자들은 아마도 점점 더 힘들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분명 그런 것은 그 업계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그리고 당신이 속한 그 업종도 아마 비슷한 길을 가고 있지만 약간의 속도 차이만 있을 뿐일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절대적인 소수만이 살아남고, 그래서 오히려 각 영역 대단한 전문가들의 몸값은 훨씬 더 치솟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 엄청난 전문가까지 필요하지 않은 '대부분의 일'은 어쩌면 '대충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부분의 일에는 일반인일 수밖에 없는 평범한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능력은 '학습력'일 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배울 의지와 약간의 시간이 있다면 공개된 그 많은 정보들로 얼마든지 학습할 수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같은 학습을 하면서도 얼마나 '빠르고 깊이' 소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개인 역량의 결과 차이로 나타날 것이다.
미래의 시대에는 교과 공부가 필요 없고 잘하는 것만 하면 된다는 얘기들도 있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단순 암기' 스킬은 언제든 검색이 가능한 이 시대에 큰 능력이 아닌 건 맞지만, 다양한 교과의 '학습'을 하는 능력은 더욱 필요할 수도 있다. 매우 다른 주제들을 사고해보고, 텍스트와 음성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이해하고 본인의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 그 '학습력'의 단련이야말로 미래 시대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능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아이들 시대에도 공부는 계속해야 할 것 같고, 어떤 세상이 어떻게 급변할지도 모르니 더욱 어떤 주제든 소화할 수 있게 '기본 학습 능력'을 단련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쨌거나 나는 책을 뚝딱뚝딱 완성 중이고, 당연히 첫 술에 결코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기회에 글쓰기뿐 아니라 이제는 디자인, 그리고 편집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 되었다. 이로써 학습력이 1% 정도라도 레벨 업 되었다면 그것으로도 큰 성과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