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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Dec 10. 2020

해외 MBA에서 얻은 것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생각

'나도 이런 주제의 글을 쓸 날이 올까' 생각했던 때가 아득하다. 이제는 유학을 다녀온 것조차 아득하게 느껴지는 때가 되었지만 (사실 그런 느낌은 업무 복귀 즉시부터다) 그래도 MBA에서 얻은 것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게 되는 때가 문득문득 있다. (.. 날린 투자는 아니었다!) 예전에 써 놓았던 글을 기반으로 다듬고 살을 붙이며 이곳에 다시 풀어놓는 이유는, 분명히 누군가는 여전히 궁금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의 글이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닿지 않아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플랫폼에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구독자 수도 어느 정도 되어 노출이 좀 더 잘 되니, 필요한 누군가에 더 잘 닿을 것 같기 때문이다.


1. 브랜드를 얻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설명이 덜 필요한 학교를 한 줄 추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다 열어주는 열쇠라는 뜻이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1) 배움에 있어 어느 정도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대충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이고, 다른 사람들처럼 커리어'도' 쌓아오면서도 동시에 GMAT이라든가, 각종 준비라든가까지 (2) 번외로 더 감당해 낼 수 있는 에너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 커리어 인생에 있어 일찌감치 큰 규모의 투자(시간적, 금전적, 기회적)를 감행할 정도로 (3) 본인의 커리어를 진지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내게 MBA 딱지는 딱 고 정도 (성실, 열정, 진지) 무게의 브랜드 가치라고 느껴진다.


입학할 당시 갓 졸업한 선배들과의 만남에서 "MBA를 준비할 때는 간절함에 그 자체가 목적처럼 보였겠지만 졸업은 결승점이 아니라, 쌓아온 모든 걸 털고 다시 제로 베이스에서 온전한 새로운 출발선을 뜻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말이 너무 맘에 들었으며, 여전히 그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100세 인생에서 인생의 1/3 정도 가까이 왔을 때에 다시 한번 깔끔히 출발 선에 설 수 있는 기회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2. 한 발짝 더 디뎌보는 용기와, 한 손 더 내밀어 보는 여유를 얻었다.


MBA에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그리 다양한 분야의 것들을 그 짧은 시간에 도저히 해낼 수가 없다. 아무리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어하는 성격도 어떤 분야에서는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전혀 알지도 못했고 본 적도 없는 몹시 바쁜 외국 동문에게 대뜸 연락해 도와달라고 시간 내 달라고, 더 모르는 사람까지 소개해달라 매달리는 것은 기존에 내가 살던 환경보다는 분명 한 발짝 더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이고, 그 용기에 대한 응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경험해 보면, 나도 도움이 필요한, 잘 모르지만 진실된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 없이 굳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배우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단지 몇십 년 전에 같은 학교에 있었던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부한 장학금이 매 순간 달러, 센트를 세어가며 살아 나가던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숨통이 되었는지 그는 알까. Give & Take는 같은 대상 간에 똑같이 일어나면 당장은 가장 공평한 것 같지만 그걸로 끝이다. 다른 사람에게 받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이상을 베푸는 것이 몇 번만 돌아도 더 큰 고리로 순환하여 더 많은 사람이 훈훈해질 것이다. 나는 그 전보다 도움을 받는 것에도, 도움을 주는 것에도 덜 인색한 사람이 되었다.


3. 새로운 네트워크를 시작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씨앗을 얻었다.


네트워크는 졸업한다고 그냥 만들어지거나,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유명 CEO가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관계가 될 리는 절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네트워크가 생겼다'는 완결형보다 '네트워크를 (원한다면) 시작할 수 있을 가능성이 생기다'는 미래지향적 의미이다. 당시엔 별로 친하지 않았거나, 같은 시기에 학교에 있지 않았어도 공유하는 강렬한 경험이 있고, 공통의 성향이 입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에서 뒤늦게 만났지만 비즈니스가 아닌 우정적인 관계를 시작할 건덕지가 된다. 실제로 훗날 알게 된 MBA 외 다른 과 동문뿐 아니라 굳이 같은 학교까지도 아니어도 젊은 날 '사서 쌩고생' 해 본 적 있는 경험을 공유하는 다른 학교 MBA 선배와도 친해질 기회가 있었는데 참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MBA를 하지 않았다면 스타텁, 금융, 엔터테인먼트 등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세계의 사람들과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나의 관심사도 넓고 깊어졌고 사회에 대한 이해도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내 분야가 아닌 것이 필요할 때 당장 어디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지 예전보다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나의 편협한 생각도 많이 깰 수 있었는데, 돈 많은 기업 2세•3세들은 가정교육이 별로이거나 배려심이 부족할 것이다, 또는 천재는 이기적이거나 괴팍할 것이다, 혹은 하버드 나온 애는 나오지 않은 애보다 당연히 똑똑할 것이다는 등의 허망한 편견을 온전히 경험을 통해 깨면서 한없이 겸허해질 수 있었던 일대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심정적으로는 당연히 경험이라면 뭐든 좋을 테지만, 어쩌면 제일 궁금할 것이 가성비, 속된 말로 '뽕을 뽑았는가?'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그 큰 비용 대비 투자 효율 (ROI, Return on Investment)이 나오냐 묻는다면, 그 투자금을 회수하는 기간을 어디까지 볼 것이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굳이 컨설팅이나 투자은행 등으로 급격히 커리어를 전환하지 않았어도 채 수년이 걸리지 않아 회수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투자금 측면에서는 학비를 40% 할인된(장학금) 금액으로 다녀왔던 것이 컸고, 회수금 측면에서는 산업을 바꾸면서 연봉이 상당히 상승했다.


학교를 안 가고 그냥 업계를 바꿔 이직을 했다면 더 가성비가 크지 않았을 거냐고? 맞다. 그리고 시도를 안 해 본 것도 아니었다. 업종을 바꾸는 것은 역시나 매우 어려웠고, 이미 한참 시작한 B2B 필드에서 더 재미있어 보이는 B2C로의 전환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까 말했던 대로 '새로운 출발선'을 부여받아 인더스트리와 업을 무려 동시에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 것이 엄청나게 큰 재산이었다. 그 안에서 다시 처음부터, 더 커진 기대와 타이틀에 맞는 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도전 과제가 계속 주어지는 것은 덤이다.


당신은 인생에서 '기회'라는 것을 얻기 위해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금전을 어디까지 투자해볼 의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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