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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Nov 06. 2020

당첨 잘되는 사람이 되는 법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교촌 허니콤보 세트가 당첨되어 기프티콘을 보내드립니다" 문자가 도착했다. 맨 처음 문자를 받고 내가 든 생각은, '음? 나는 이런 거 잘 안되는데?'였다. 그랬다. 나는 항상 뭐 '행운 도전'이랄지 '경품 추첨'이랄지 거의 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게 되다니 웬일이지?'



우리 엄마는 이런 경품 행사 등에 참 잘 당첨되는 사람이다. 어디든지 가서 추첨을 하면 1등처럼 대박템까지는 아니어도 뭐라도 하나 걸려 오고, 빈 손으로 잘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 원래 잘 되는 사람만 맨날 되는 거지.'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되는 거지 어차피 그런 건 내 것이 아니야.'라고 점점 더 그 믿음을 강화시키며 굳이 힘을 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머, 제가요? 제가 정말 1등이라고요? 저 그런 거 한 번도 된 적이 없는데.. 진짜 저 맞아요?" 마케터로서 경품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1등 당첨자에게는 무려 갤럭시 폰이 당첨되었다고 연락을 직접 돌린 적이 있는데, 그때의 반응이었다. 좋아하기 이전에 '의아하다'는 반응. '1등에 당첨되는 사람이라고 원래 늘 익숙한 행운이 따르던 사람이라는 것은 아닌가 보네?'라는 생각을 스쳐하고 지나갔지만, 추후 경품 배송 등의 실무 처리에 정신이 없어 그 뒤로 깊이 생각을 하진 않았었다.



이번에 치킨 기프티콘을 받고 나서 잘 생각해보니, 엄마가 종종 당첨이 되었다며 가계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이것저것을 얻어온 비결이 갑자기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무리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추첨이나 경품 행사라도 무조건 다 응모를 하고 보는 것이었던 것이다. 내가 속된 말로 '짜치다'며 무시한 동네 주민 행사부터, 사지도 않을 물건이라도 이목을 끌기 위한 행사 지나치게 되면 '뭔가 하나는 될 거야'라며 행운권 추첨을 할 때까지 꼭 끝까지 기다렸다. 다른 행사에 가 봐도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중간에 가버려 그 행운이 남에게 돌아가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엄마는 그렇게 '남이 버린 행운까지 얻어걸릴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엄마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응모 횟수'가 많고, 혹 안 되는 경우라도 크게 괘념치 않지만, 대신 당첨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나는 역시 행운이 따르는 사람이야'라며 자기 암시를 강화하는 요소로 활용했다.


반대로 나는 몇 번 해보지도 않고, 혹시 커피 한 잔이라도 당첨되어도 '역시 응모하면 거의 다 주는 거 하나 어쩌다 걸렸군'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거나, 행운을 감사할 수도 있는 일상의 기회를 굳이 애써 폄하하고 넘어갔다. 그러고 다음에 기회가 있어도 '난 어차피 안 되는 사람이야. 굳이 시도하는 게 의미가 없지.'하며 응모조차 안 하고 넘어간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치킨 건은 정말 오래간만에 다른 것 하는 김에 옆에 보이길래 '뭐 버튼 하나 더 누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내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하며 응모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런 경품 추첨이라는 것은 정말로 랜덤 하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당첨 횟수'를 올리는 방법은 절대적인 '응모 횟수'를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 내가 갤럭시 폰을 주는 경품 1등 당첨자를 선출했을 때에도, 공정성을 위해 심지어 타 부에서 엑셀 랜덤 함수를 여러 번 돌려 우연히 한 명이 걸려든 것이었다. 애초부터 행운이 따라다니는, 혹은 원래 잘 당첨되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랜덤 함수 사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생의 다른 일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은 어차피 내재된 자질 순이 아니라, 얼마나 시도했고 결국 결과를 얻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닐까? 세 번 시도해서 한 번 성공하는 것의 승률이 30%라서 열 번 시도해서 두 번 성공하는 승률 20% 보다 가성비가 높다고 혼자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나중에 기억는 것은 승률이 아니라 '1회 성공 vs 2회 성공 기록'이라는 '절반 혹은 두 배의 성공률'인 것이다. 내가 원하던 만큼 아직 성공을 못했다고 느껴진다면, 어쩌면 아직 그만큼 덜 시도해봤기 때문이 아닐까? '효율'은 만족할만한 성공을 어느 정도 하고 나서 따져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아직 배가 부르지 않으니, 좀 더 바지런해지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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