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우리는 언제 다시 볼 지도 아닐지도 모르겠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이유가 되어 어떤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이기적으로 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욱 최선을 다하기도 한다.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본인의 선택이 나름의 논리에서는 합리적인 것이었을 테고, 평소보다도 더욱 후한 인심을 쓰는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이 편하기 위한 행동이었을지도모르겠다. 그런데 별 대가를 바라지 않고 했던 행동들이 훗날 의외의 곳에서 복리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사회생활하면서 그런 경험을 쏠쏠히하게 되었다.
1. 여태 일 쉬고 왔는데 이런 중요한 일을요?
나는 최근 14개월 만에 복직한 워킹맘이다. 오랜만에 회사라는 곳으로 돌아가려니, 감사하게도 내게 옵션이 생겼다. 기존의 조직에 다시 그대로 돌아가는 것,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는 더 예전의 조직으로 가는 것, 그리고 전혀 다른 곳으로 가는 것.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소모만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당연히 나의 선택은 전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 조직은 사실 업계의 가장 핵심부서로, 철옹성같이 진입장벽이 높아 들어가기 힘들 뿐 아니라 가서도 쟁쟁한 공채 출신들의 틈바구니에서 상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했다. 특진을 목전에 두고 출산/육아 휴가/휴직을 하느라 이미 늦게 되어버린 진급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지만, 나는 고과 모험을 하더라도 버벅대더라도 분명 새로 배울 것이 더 많은 곳을 선택했다.평판이 별로면 복직 시 부서에서 다들 거부하여 뺑뺑이를 돌다 발령이 엄한 데로 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다행히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기존의 조직들로 돌아가면, 당연히 나의 그간 히스토리며, 기반이며 갖춰져 있으니 분명 편리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그간 힘들게 쌓아놓았던 것을 다 버리고 새로이 시작하려는데 발령받자마자 조직에서 올해 가장 중요하다는 과제 두 개중 하나가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온전히 맡겨지게 되었다. 나는 새로이 백지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했지만, 조직은 내게 계속 꼬리표를 붙이고 있었나 보다. 임원은 내게 '들었던 바대로 기대하고 믿고 맡긴다'는 말을 하였다. '음.. 저를 아세요..?' 솔직히 출산 휴가를 가기 전 나의 맘 속으로는 이후 그 회사로 다시 돌아갈 확률이 반반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난 임신했으니 배 째라'가 아니라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임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과 전혀 다른 바 없이 모든 최선을 다했던 발자국이 14개월이 지나 전혀 다른 곳에 가서도 나도 모르게 찍혀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2. 선택하지 않는 중요한 선택의 논거
어떤 공영 방송사에서는 육아'휴직' 들어간 남자 아나운서도 승진을 시켜주는 시대라길래, 심지어 성과주의를 표방하는 사기업인데 이 시대에 혹시나 출산 '휴가'에 들어간 나도 승진을 시켜주지는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버리지 않았었다. 연말 평가 시즌에 면담하기를, 그간 만삭의 배를 부여잡고도 전혀 업무를 빼거나 일을 덜하지 않은 것,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인정할만한 성과가 있었다는 것을 팀장도 임원도 모두 수긍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표된 승급 기준 계산식에 따르면, 나는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특진의 조건이 충분히 되는 누적 점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필요조건인 점수 외에도 조직의 마지막 직급으로의 승진이라는 것은 많은 윗사람들의 '적극적인' 서포트가 필요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여태 단 한 번도 부재시 승진한 사례가 없었던 전통은 전혀 깨질 기미가 없었다. 헛된 꿈을 꾼 나 자신에게 이불 킥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겐 굳이 그런 조직으로 다시 돌아갈 이유가더 이상 별로 안 남게 되는 근거가 생겼다. 한편으로 조직의 논리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몇 개 없는 승진이라는 카드를 과거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당장 일을 실컷 부려먹어야 하는 손발들에게 미래의 당근으로 써먹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유리천장도 뭣도 아니다. 그냥 차가운 조직의 생리에서 '이유가 뭐였 건 한동안 결과적으로 부재할 인력'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휴직 후 돌아가지 않는 옵션을 고려하는 중, 괜찮아 보이는 자리를 몇 번 제안받기도 하였었다. 결국은 거의 거절, 또는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지만, '변화를 선택하지 않는 적극적 선택'을 내리는 데에 있어 나는 또 내가 과거에 뿌려놓은 씨앗들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희망퇴직을 선택하여 한몫 두둑이 챙겨 퇴사하는 사람에게도 내가 그간 딱히 빚진 것이나 엄청난 친분은 없었지만 마지막이니 밥이나 한번 먹자며굳이 점심한 끼먹이고 보낸 것, 계열사 전배를 가 있는 사람의 결혼 소식을 휴직 중에도 전해 듣고 별도로개인적인 축하 인사와 축의금을 보내준 것, 이런 것들이 훗날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엄청 강력한 끈이 되어주고 있었다. 몇 년 만의 첫 연락임에도 반가워하며 허심탄회하게 지금 이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선택인지를 소상히 공유해 주어 그 빛 좋은 개살구에 속지 않고 '면밀히 검토 후 진행하지 않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 계열사간 이동 시도조차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내부 사정을 충분히 듣고 역시 '면밀히 검토 후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결론'도 내릴 수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밥을 사주거나 축의를 하지 않았더라도 비슷한 내용을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뜻 간만의 연락을 함에 있어서도 나 스스로가 떳떳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들에게 채무자가 아닌 채권자와 같은 당당함이 마음속 깊은 곳에 아주 조금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네트워크란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살면서 전혀 잊고 있던 씨앗들이 세상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결정적인 순간에 당장 얼마를 줘도 절대 살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 되어줄지 아무도 모른다.
3. 협조를 넘어 누군가의 서포터가 된다는 것
약 6년 전에, 잠시 두 달간 프로젝트처럼 같이 일을 한 분이 있었다. 이 시기는 나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심정적으로 암울하고 쭈그리였던 시기라 당시에 처음 그리고 짧게 나를 만난 사람이라면 나의 진짜 모습이 어떤지 아마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시기에 잠시 함께했던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괜찮게 평가했었고, 꽤나 연락이 끊겼던 몇 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감동받는 일이 있었다. 나는 단지 살짝 문의만 했을 뿐인데, 먼저 반갑게 전화 걸어주고, 그간의 여러 안부와 업데이트를 나누고, 적극적으로 본인 이름을 걸고 추천까지 해주고, 다른 사람까지 소개해준 참 감사한 인연이다. 그를 보면서 다짐했다. 나도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적극적인 서포터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누군가에 대한 최종 감정이 나쁜 것이 아니라면, 수년이 지나더라도 열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마인드를 가져야겠다고.
이번 책 출간 과정에서도 사전 펀딩을 진행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검증되지 않은 나의 책을 응원해주고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어준 것은 정작 그 책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이 전혀 아니었다. '생후 1년육아'가 책의 주 내용이었지만, 정작 나의 주변인 중에서 그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육아에 바빠서든, 관심이 없어서든 한 명도 후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반면 이미 애들을 한참 키워서 더 이상 그 시기를 겪을 일이 없거나, 딩크 또는 비혼주의거나 등등 전혀 필요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선뜻 펀딩이 오픈되자마자 예약 구매를 진행하였다. (덤으로, 내가 책 사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사겠다고 먼저 요란하게 나서던 사람들은 정작 실속이 없던 기이한 현상도 만나기도 했다.) 결국 지인 구매로 이어지는 것에는 내용의 '필요성' 보다는, 원래 '독서에 대한 관여도'가 꽤 높은 사람 중에서 나라는 사람의 '관점에 대한 궁금함'이 훨씬 더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후원자의 절반 정도는 필요도 하지 않은 그 책을 덮어놓고 두 권씩이나 구매해주어, 너무 감사한 마음에 별도의 선물을 함께 보내주려고 가장 먼저 주문을 해 놓았다. 나도 주변에 누군가 뭘 해보겠다는 사람이 생기면, 나의 필요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그저 열렬한 응원을 일단 보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조직에 복직을 하게 되었고, '그 새로운 팀'에서 다시 신나게 일을 하게 되었다. 역시나 완전히 다른 업무에 다른 팀이라도 그 조직은 그 조직이고, 시스템이고 문화고 익숙하니 적응에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할 것이 없어 편하긴 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의외로 사내 곳곳에 전화 한 통으로 쉽게 해결하는 일들이 많고, 그간 새까맣던 후배들도 많이 커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생각보다 일이 쉬워지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는 당장 그 '전화 한 통'으로 보이는 일 역시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조금씩 뿌려놓은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었음을 다시금 상기하며 미소 짓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일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과거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잘할 기회가 더 없을지도 모를, 마지막일지 모를 때 미리미리 더 잘해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