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시대의 비극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순전히 주변인 통계로는 이미 75% 이상 육박한 감염 수준이다. 그 감염들이 최근 2~3주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이 더 놀라운데, 어쨌거나 우리 집도 결국 피해가진 못했다. 개인 및 시대 역사의 기록,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될 공유를 위해서 간단히 남겨본다.
1. 할머니에게서 아기로
울 엄마는 워낙 활동적이어서 하루라도 집에만 있으면 병나는 스타일이라 이 시국에도 예전부터 거의 매일 나갔고 사람들을 만났다. 심지어 밥도 거의 하루에 한 끼는 무조건 나가서 먹었다. 그리고 중간에는 동생 결혼식 때문에 열흘간 외국에도 나갔다 오기도 했다. 그런 것 치고는 정말 운 좋게 안 걸리고 용케 비켜간다 했는데, 결국은 지난주 수요일 심하게 몸살감기가 왔다고 한다. 새벽에 끙끙 앓았다던 그날 아침, 나는 8시부터 외국과 줌 미팅이 있어서 심지어 아이를 8시 전부터 엄마에게 맡겨야만 했다. (엄마가 그날 새벽부터 앓았다는 걸 내게 얘길 했다면 어떻게든 안 맡겼을 것이다 ㅠㅠ) 밤새 앓고 이른 아침부터 애까지 본 엄마는 완전히 앓아누워버렸는데, 그게 그냥 몸살이 아닌 코로나로 판명이 났다.
우리 애는 수목 아무 징후도 없다가 목요일 밤 자다 말고 갑자기 너무 뒤척여서 깰 수밖에 없었는데, 고열이라긴 애매한 중열 정도가 느껴져서 해열제를 먹이고 다시 재웠다. 그다음 날 금요일 아침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멀쩡했고 전날 자가 키트도 음성이었지만 혹시라도 무증상 감염이라도 되어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등원 전 소아과부터 가봤다. 9시 반에 갔는데 대기만 40명이 넘었다. 너무 아무렇지 않은 아이인데도 신속항원 검사 키트에 한 방울 떨어뜨리자마자 선명한 두 줄이 떴다. 빼박이었다. 동시에 나도 검사를 했으나 음성 판정. 처방약을 받아왔으나 먹을 새도 없이 아이는 너무 멀쩡했다. 다음날 밤에 약을 절대 안 먹겠다고 해서 (우유에 타 줬더니 귀신처럼 알고 한 방울도 안 먹는다고 거부) 미열이 있는 듯 없는 듯 한채 잠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그야말로 정상 컨디션이다. 어린이집에서도 추가 감염은 없었다고 한다.
2. 아기에게서 엄마로
코로나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엄마가 아픈 걸 알고부터는 내가 아기를 100% 전담하였다. 아이의 확진을 확인한 순간부터 나의 전염은 이미 각오를 한 터였다. 왜냐하면 이제 갓 두 돌 지난 아기를 격리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빠르게 내렸기 때문이다. 격리라는 것은 스스로 밥을 먹고, 혼자서 씻고, 자기 용변을 처리할 수 있고, 먹다가 뱉는다거나 여기저기 물고 빨고 묻히는 짓을 안 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수준의 나이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너무 어려서 누워만 있거나 활동 반경이 적으면 또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뛰어다니면서 마구 휘젓고 다니는 나이의 아이에게 활동 반경의 격리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스쳐 지나간 모든 것을 쫓아다니며 계속 소독을 할 수 있을까? 그가 흘린 그 모든 음식을 치울 때마다 그 주변을 다 소독하고, 아이와 접촉을 하자마자 매 순간 하루에 손을 수백 번 씻고 하루 종일 혼자라도 마스크를 잘 끼고 있으면 그래도 안 옮을 수 있을까? 어차피 불가능이라고 판단했다.
남편의 닦달로 잠시 초반에 마스크를 끼는 흉내라도 내어봤는데, 아이가 자기 앞에서 내가 방어막을 치는 느낌이 수상했는지 스스로 침 잔뜩 묻은 손으로 내 마스크를 벗겨 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밥을 먹는데 내 얼굴에 뭐가 묻었다면서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다가와서 "엄마 얼굴에 묻었쪄"하며 (역시나 침 잔뜩 묻은 손으로) 입을 닦아주는데 그런 심쿵한 장면에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안아달라는 아기를 안고 재우다 보니 내 베개와 이불에 침을 질질 흘려둔 것 역시 덤이다. 어차피 24시간 방독면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면, 몇 시간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의미도 없을뿐더러 소득 없는 불편만 초래한다고 보아 아예 자유롭게 생활했다.
3. 드디어 올 것이 오다
아이가 금요일에 확진 판정을 받은 이래 토요일까지 모두 멀쩡하다 일요일이 되니 아침부터 온 몸을 칼로 써는 듯한 몸살이 왔다. 나는 두통도 아니고 인후통도 아니고 특이하게 하체 쪽이 제일 아팠는데 그 와중에도 인어공주가 물고기 꼬리를 포기하고 인간으로 변신할 때 이렇게 다리를 칼로 난도질당하는 느낌이었겠다는 상상까지 해보았다. 출산할 때에도 라섹 수술 후에도 진통제 한번 안 쓰고 버틴 나인데 타이레놀을 이날 두 개나 집어 먹었다.(그걸 마지막으로 이후 더 먹진 않았다.) 그다음 날까지도 몸을 군데군데 칼로 써는 느낌이었다가 삼일째 되니 전신을 꼬집는 느낌으로 바뀌었고 4일째가 되니 간간이 꼬집는 느낌에서 서서히 잦아들었다. 다행히 큰 인후통은 없는 것 같고, 3일 차에 가래가 아주 가끔 생겼는데 그 덩이가 너무 커서 정말 숨이 막혀 죽겠다 싶은 게 두 번있었다.
첫날 아무리 아파도 자가 키트는 음성이었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처음 바이러스를 인식하고 몸에서 방어기제를 작동하느라 고열이 가장 심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초기이므로 체내 바이러스의 상대적인 양 자체는 적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3일 정도 지난 후에야 양성이 나오더라는 경험담을 많이 접했었고, 생각해보니 그때쯤에는 이제 고열에서 코, 가래 등으로 국면이 접어들면서 바이러스 덩이를 뭉티기로 체내로 배출시키는 단계라 훨씬 검출이 쉬울 거라는 게 이해가 되었다. 역시나 몸은 덜 아픈 3일 차, 끈적한 코에 살짝만 찍어도 바로 양성이 떴다. 결과적으로 50프로의 공통 유전자, 같은 혈액형을 가진 엄마와 나는 같은 바이러스로 3일 바짝 오지게 몸살이 오는 같은 코스를 밟았는데 엄마는 그 이후 극심한 인후통이 시작된 반면 나는 운 좋게 그 부분은 비켜간 듯하다. 차이라면 엄마는 백신 완전 접종이고 나는 미접종이지만, 우리는 나이 차도 상당하기에 뭐 때문에 어떻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순 없다.
결국 그야말로 시체와 진배없던 초반 이틀, 남편이 아이를 풀타임 케어해준 덕에, 나는 이후 병가 하루도 쓰지 않은 채 애를 반나절씩 보면서(라고 쓰고 방치라 읽는다) 재택근무도 소화를 다 하고야 말았다.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짧게 지나갔음에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감사한다.) 4일 차에는 심지어 8시부터 오전에만 미팅 4개를 연달아 참석했고, 오후에 잠시 짬이 날 때엔 청소를 하였고, 5일 차는 그간 산더미로 쌓인 설거지도 다 해치울 정도로 완전히 회복하였다. (3~5일 차 오후엔 회복한 엄마가 아이를 데려갔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내가 살만하니 이제는 남편이 시작되었다. 남편에게는 심지어 더 아프게 와서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 이제 또 다른 시작이 예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