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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Jul 25. 2019

사회화된 호의에 쉽게 호구 되지 않기

줄 때도 받을 때도 사실 단순하지 않다

호의의 신박한 활용법


적도 내 편으로 만들어버리는 신박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 해를 끼친 상대를 어이없을 정도로 너무 쉽게 용서해버린다거나, 삐딱한 상대방을 포용하는 것을 넘어서 좋아해 버리거나 해서 아예 다른 차원의 스케일로 끌어안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웬만한 노력으로 될까 싶은 천성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노련함으로 계산된 전략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어떤 동료'A'가 왠지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는 것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나뿐은 아닌지라, 친한 동료끼리 서로 심금을 털어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 사람에 대한 불만이 대화의 소재로 등장했을 때 공감하면서 맞장구를 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소재가 된 사람은 전혀 그런 것을 모르고 언젠가 내게 먼저 큰 호의를 베푼다. 이 순간 나의 인지 체계에서는 큰 도덕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잠재적 '적'으로 분류해둔 사람이 나를 적이 아닌 '호의의 대상'으로 대접한다? 그 호의가 계산적이거나 의도적인 것이 아닌 순수한 호의라는 것을 아는 순간, 나는 적이 아니라 빚쟁이로 전락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예전에 뭔가 안 좋게 말했던 순간조차 미안해지면서 그 인지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미안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에게 더 큰 호의로 응답하거나, 다른 동료가 또 다른 안 좋은 얘기를 할 때 적극적으로 항변해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존경하는 Adam Grant 교수의 "Give and Take"라는 책에서도 실증적으로 보여줬듯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은 만큼은 어떻게든 돌려주고자 하는' Matcher가 대부분이다.


평범해 보이는 호의의 이면


그런데 이런 경우 사실 엄밀하게 따져보면 네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첫 번째는 호의를 먼저 베푼 A가 정말 원래 '곰'같은 사람이라 스스로 민폐를 끼치는지 조차 "잘 몰라서" 그런 실수를 했던 것이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도 둔감하고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을 못하기 때문에 호의를 남발하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사실은 A가 정말 '여우'같은 사람이라 남들의 불편보다 자신의 이득이 중요해서 알고도 민폐를 끼친 것이었고, 어느 순간에 사람들이 등을 돌린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나마 마음이 약할 것 같거나 가장 도움될 것 같은 상대를 "전략적으로" 골라서 일부러 먼저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나'라는 사람이 보통의 일반 소시민, 즉 받은 만큼은 돌려주려 하는 'Matcher'일 경우 쉽게 A에게 매수(?)되고 말 것이다. 네 번째 '나'라는 사람이 사실은 양심 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이득만 챙기는데 관심이 있는 전형적인 'Taker' 타입의 사람이었다면, 혼자 호의는 호의대로 챙기고 계속 '적'으로 남아 A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 머물 것이다. '곰'이 'Taker'를 만나면 호구가 되는 것이고 적어도 'Matcher'를 만난다면 평화가, '여우'가 'Taker'를 만난다면 복수할 것이고 'Matcher'나 심지어 'Giver'를 만나면 이용해 먹을 것이다. 결국 간단해 보이는 현상이지만, 주체들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진실로 이어질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이분법적 사고조차 피곤하다고 여기는, 별로 머리 굴리지 않고 판단 자체를 안 하고 사는 회색지대 사람들인 경우도 분명히 꽤 될 것이다.


호의도 악의로 만드는 신박한 부류


반면, 어딜 가나 항상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늘 삐딱한 사람들이 있다. 뭔가 현상이 발생했을 때, '좋은 면'을 보기보다는 '나쁜 면', '나쁠 수도 있는 면', '어쩌면 혹시 나쁠지도 모르는 면'을 어떻게든 찾아내는 타입이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남들의 호의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상대방이 정말 선의로 한 행동조차, 뭔가 사심을 가지고 이득을 취하려 하는 행동이 아닌가 의심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좋은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사람이다. 가장 안 좋은 경우는 그 검증도 안된 의심을, 그때그때 직접 즉각적으로 표출하는 스타일인데 심지어 그것이 무례하다는 것도 모르고, 자신은 스스로를 "예리하고" "솔직한" 스타일일 뿐이라는 착각에 빠져 영원히 누구도 구제해줄 수 없는 상태인 경우다. 이럴 때 선제적 호의를 베풀려던 상대는 많은 경우 호인이기 때문에 그냥 (어색히) 웃으며 넘어갈 것이다. 약간 덜 호인(호의는 있으되 옳고 그름이 분명한 센서티브 한 타입)의 경우는 아마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의 불편한 기색을 어느 정도 내 비치고 넘어갈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두 경우는 다르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후 결과는 아마도 같을 것이다. 그 상대방은 (병신이 아닌 이상) 다시는 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삐딱했던 사람은 왜 사람들이 맨날 자기에게만 부당하게/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으로 보이는지 계속 억울한 채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이 삐딱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시 세상 탓이고 환경 탓이라는 순환 논리에 빠져 피해의식이 일상화된다.  


고수의 고수 대응법


물론, 위에도 언급했듯이 애초에 순수한 의도의 호의가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자신의 이득을 위한 가장된 호의를 베푸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경우조차 '내'가 그 '검은 의도'를 안다는 티를 팍팍 내 공격할 경우, 상대는 대부분 인정하기보다 오버스럽 펄쩍 뛰면서 더욱 큰 반작용을 보이거나 복수할 확률이 크다. (원래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상대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티 내지 않고 조용히 호의를 이용하는 것이다. 어차피 상대도 자신의 이득을 위한 행위이기에 마찬가지로 나도 딱히 마음 쓸 것 없이 상대로부터 이득만 챙기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상 더 엮지 않도록 피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더 수가 높다고 생각되는 경우 계속 곁에서 그 얕은 수를 이용해 먹기도 한다. 여기서부터는 본인이 가진 도덕성이나 가치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눈치가 상당히 빠른 편이지만, 그것을 이용할 생각은 없는 편이다. 신중한 판단을 위해서 여러 번 기회를 주고 (몇 번은 알고도 당해준다) 충분한 확인 사살을 한 후에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면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는 스타일이다. 인간관계에서 진심이라는 가치가 가장 중요하기에 속 마음이 어떻든 그저 겉으로 아름답게만 마무리하기보다는, 그것이 언제 닿을지, 아니면 영원히 닿지 않을지 모를지라도 진심을 반드시 남기고 마무리한다. 아마도 나는 알고도 스스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중수 혹은 하수일 것이다. 진정한 고수는 나처럼 알고도 단 몇 번이라도 당해주는 확인 사살의 수고를 할 필요도 없이 빠르게 그리고 몹시 평화롭게 관계를 손절하거나, 아니면 그냥 알고 서로 계속 이득을 취하는 관계를 잘 활용해나가는 것을 택할 것이다.


모두가 고수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스스로 알면서도 중수 혹은 하수의 길을 선택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코 잃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첫째로, 어쨌거나 나는 충분한 확인 사살을 당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오해했을까 하는 일말의 미안함이나 미련이 남지 않는다. 두 번째로, 깨끗하게 등을 돌렸기 때문에 추후 다시 나를 이용해먹으려고 질척거린다거나 인생에서 다시 거슬릴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언젠가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내 등에 칼이 꽂힐 수 있는 리스크도 사실 없지는 않다..) 세 번째로는, 그 과정에서 나의 진심을 더 쳐주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꼭 나타난다는 것이다. 딱히 용기가 없어서, 귀찮아서, 혹은 아직은 그렇게까지 짜증 나지는 않아서 표면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미 다 잘 알고 있다 애초에 누가 문제였는지를. 아니러니하게도, 하나를 버리는 그 순간 오히려 여럿을 쏠쏠히 건지게 되는 경우도 이때에 발생한다. 분명히 호의를 먼저 베푼다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고,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정말 순수한 의도의 호의만 세상에 가득하다면 참 좋겠지만, 권모술수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늘 그럴 수만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가 너무 때 묻지 않고 순수해서 어떤 의도도 하얗게 만들어버리는 신박한 능력이 있지 않은 한,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늘, 상대의 진실을 알고자 할 뿐이다. 누군가의 진짜 선한 의도마저 멋대로 왜곡해버리는 비뚤어진 사람만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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