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상대를 나와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최연소 팀장, 회사 역사에 남은 굵직한 성과들을 내면서 한 때 누가 봐도 1순위 임원감이었던 모 팀장이 퇴사 인사를 돌았다. 그는 그간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매일 술을 마시며 네트워킹하고, 모시던 잘 나가던 형님들의 라인도 쭉쭉 타고 했었지만, 결국 별 한 번을 달아보기도 전에 몇 기수 후배 밑 무보직 팀원으로 편입되는 수모를 이기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했다. 50이나 됐을까 싶은 그는 외벌이에 장성하지 않은 애가 셋이다. 본인의 노후를 얼마만큼이나 별도로 준비해왔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딴 주머니를 찼으리라고 짐작하기엔 너무도 회사 생활에 올인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좌천된 후 그의 심리 상태가 우울증 걸릴까 봐 매일이 조마조마하다는 옆의 후배들의 얘기를 들었던 터라 차라리 잘한, 용단 있는 선택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결코 공무원을 선택하지 않을 사람들
내가 평생 단 한 번도 공무원, 선생류는 고려 직업군으로 생각한 적 없듯이, 자발적으로 대기업 직장인을 선택한 일부의 사람들은 직업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 나도 아마도 언젠가 단지 '연명'만을 해야 하는 때가 도래한다면, 그냥 몇 년 더 버티면서 실리를 챙기기보다는 나의 자존심을 택하고 다른 길을 하루라도 빠르게 모색하러 나가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또 막상 그때 가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삶에서 성장, 발전이라는 가치가 우선순위의 최상단에 있는 나로서는 더 이상 그 가치의 날개가 확실히 부러짐을 깨달았을 때 추락하는 길 밖에 없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초격차'에서 읽었던 권오현 삼성전자 전 회장은 정말 초격차급 리더가 맞았다. 일찌감치 자신의 직속 후배를 직속 상사로 모셔야 하는 수모를 8년이나 감내하면서도 정말 '잘' 버텨냈고, 결국 그 상사보다 훨씬 높이 오래오래 가셨으니까. 그는 자존심을 무릅쓰고 버티는 스케일마저 초격차급이었다. 물론 그를 단지 무용담으로 미화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의 심적인 갈등마저 솔직히 공유해준 모습도 너무 멋졌다. 그처럼 본인의 자존심을 걸고라도 결국은 그곳에서 승부수를 보고 끝내 해피엔딩을 이끌어 내겠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없다면, (공무원을 하려다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사기업으로 넘어온 케이스가 아니라면) 끝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꿋꿋이 정년까지 버티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애초에 무탈한 정년만을 목표로 크게 잘 나가지도, 크게 사고도 안치는 선을 칼처럼 지키며 유지해 나가는 사람들은 애초에 팀장이나 임원감의 풀로 거론된 적 없어 딱히 자존심의 상처를 입을 계기도 적다.
짝사랑이 지나친 사람들
지금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덜하지만, 조금만 앞선 세대만 하더라도, 본인이 조직 내에서 열정을 바친 만큼 조금 잘 나간다 싶으면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정도의 충성심을 강요하는 경우들은 매우 흔했다. 어떤 상무는 경쟁사의 브랜드 휴대폰을 쓰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혼내거나, 또 다른 부사장은 보통의 직원들이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그룹 전체의 소식을 담은 아침 방송의 시청률을 직접 돌면서 체크하기도 했다. 불필요한 문서의 이쁜이 작업을 위해서라면 야근은 당연하고, 함께 늦게까지 으샤으샤 했으니 더 늦은 시간의 회식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묵시적 강요를 하는 것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그렇게 회사와 내가 혼연일체로 느껴지지 않는 대부분의 나와 같은 한갓 일개미들에게는 그러한 사고방식이 상당히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솔직히 말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속으로 조용히 되받아 치는 말, "그 회사 님 꺼 아니지 않나요?" 어차피 그러나 저러나 그도 나도 조금 차이나는 월급 받고 남의 회사 잘 되라고 잠시 일해주는 스쳐가는 용병에 다름 아니다. 조직의 문화를 수평으로 바꾼다면서 다들 프로니 뭐니 직책명만 바꾸면 뭐하나. 프로는 하는 만큼 정확하게 몸값을 인정받고, 더 쳐주는 데가 있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떠나는 것이 맞는 세계 아닌가. 그 얼마 전에 퇴사한 사람도 같은 팀원들에게 엄청난 업무 내외적인 충성을 강요했던 것으로 들었다. 마지막으로 밑에 있던 새까만 후배에게 물어보니 더 보지 않게 되어 속 시원하고, 괜히 마지막이랍시고 악수조차 해서 기분이 더럽다는 말 까지 한다. 나름의 방식으로 회사에 대한 짝사랑이 지나치다 못한 사람의 말로 치고는 참으로 씁쓸하다.
결국, 모두 거쳐가는 인연일 뿐
어차피 내 회사가 아닌 일반 직장인인 이상 우리는 언젠가는 모두 퇴사를 한다. 그 회사에 조금 먼저 들어갔다고, 조금 더 오래 다닌다고 한들 길게 보면 다 거기서 도찐개찐 아니겠는가. 사원증을 반납하고 돌아 나오는 그 순간부터 그 회사는 '우리' 회사가 더 이상 아니다. 그냥 내가 한 때 잠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일해줬던 회사일 뿐인 것이다. 거기에서 남기는 것은 회사의 감사패도, 기업 로고 배지도 아니고, 그때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같이 으샤으샤 하면서 힘이 되어주었던 동료들, 회사 생활 잘하라고 피와 살이 되는 피드백과 애정 어린 조언을 주었던 선배들, 그리고 내가 자기들보다 연차 조금 더 많다고 잡스러운 일도 웃으며 많이 도와줬던 싹싹한 후배들. 남는 것은 사람과 추억뿐인 듯하다. (덤으로 병을 얻어서 나오는 것만은 절대로 경계해야 한다.) 어차피 내 회사도 아니고, 업계를 떠나는 마당에 보면 전체적 평판이 뭐가 중요할까. 나는 모든 사람에게 무난한 평판을 가지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회사가 아니어도 앞으로 인생에서 같이 늙어가며 반가울 내 사람을 한 두 명이라도 건지고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맘 붙일 곳 있다는 심리적인 지지대는 회사를 다니는 중에도 아주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또라이들에게까지 좋은 사람인 척, 썩어 문드러지는 속을 위선적 가면으로 가장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고, 대신 몇 명이라도 진정한 내 편을 만드는 데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것이 직장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더욱 비 실리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진짜 나의 모습인데 어쩌겠는가.
우리는 거의 초반 30년을 사회에 써먹어지기 위한 기반을 닦는데 인생을 쓰고, 그 뒤 30여 년은 사회에서 생산활동을 하는 데 쓰고, 나머지 30여 년은 그간 살면서 쌓인 것들을 까먹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까먹을" 것에는 당연히 금전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건강적인 측면, 그리고 관계적인 측면도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임원으로 잘 나가다가 퇴직 후 그간 잊고 있던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면, 반가워 하기보다는 어떤 부담스러운 부탁이라도 받게 될까 봐 상대가 긴장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물론 그간 모든 사생활을 접고 회사를 열렬히 짝사랑하여 올인한 결과 임원까지 달 수 있었겠지만, 그 회사가 더 이상 내 회사가 아닌 시점이 도래했을 때, 그때부터도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많이 남아 있다. 은퇴 후의 삶의 보험은 은퇴 하기 훨씬 전부터 미리미리 들어 두는 것이 아니겠는가.